지난달 11월20일 금융위원회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을 발표하며, 이례적으로 입법예고와 다름없는 의견청취 절차를 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제2금융권까지 임추위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 재계, 특히 삼성그룹의 반대가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금융위는 본래 12월 10일 시행 예정이던 해당 모범규준의 시행일을 돌연 2주 연기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24일 금융위원회는 문제의 임추위 의무 설치 조항을 은행과 지주회사에만 적용하고 재벌기업 계열회사가 대거 포진한 제2금융권에는 사실상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의결하였다.

 

이는 결국 재계의 반발과 업계의 로비에 굴복하여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의 방향이 뒤집힌 것으로, 금융위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은 것에 다름 아니다.

 

금융위는 약 2년 반 전 “개별 금융업권별로 차이가 나는 지배구조에 관한 사항을 통일적이고 체계적으로 규정하여 금융업 간의 형평성을 제고”할 목적으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하였으며, 동 법안은 현재 국회에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약 6개월에 걸친 심사 기간 동안,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와 관련하여 업권별로 적용 수위를 달리하는 방안은 단 한 번도 논의된 바 없다. 법을 제정하려는 목적에 정면으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애초에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사항은 법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모범규준을 만드는 것 자체가 면피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법안 처리에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강제력도 없는 규준으로 정하겠다더니, 그나마 면피 차원에서 만든 모범규준조차도 업계의 반발을 못 이기고 대폭 후퇴했다. 혼란과 후퇴, 갈지자 행보, 지난 국감에서 KB사태와 관련하여 “유례없이 무능하다”고 질타받았던 금융당국의 문제점들이 KB사태의 교훈을 정책으로 입안하는 과정에도 재차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부법안을 제출하고 2년 반이 지나도록 정부 여당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대주주 적격성 유지 심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으나,

 

이 법은 정부가 선정한 중점 추진 법안(“민생안정 및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 30개에서도 빠져 있고, 정부 여당은 사실상 법안 처리 의지조차 없는 상태이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은 착한 아이를 위한 것이다. 모범규준은 ‘comply or explain’원칙에 따라 모범규준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그 이유를 공시해서 설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조차 못하겠다는 삼성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가당치도 않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의 조속한 입법을 위해 나설 것이다. 정부 여당 또한 입법에 적극적 의지를 보일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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