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지출 증가에 따른 증세 압박과 관련 보편적 복지를 축소해야 할지, 아니면 증세 카드를 꺼내야 할지를 두고 논란이 지속하고 있다.

 

[중앙뉴스=신주영기자]복지지출 증가에 따른 증세 압박과 관련 보편적 복지를 축소해야 할지, 아니면 증세 카드를 꺼내야 할지를 두고 논란이 지속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론'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공약에 역행하게 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복지수요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현재와 같은 증세 없는 복지는 지속할 수 없다는 데에 대부분 전문가가 공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차별적인 무상복지를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가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증세는 기업과 가계에 부담을 초래해 경기회복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논리다.

 

다만 보편적 복지를 축소하든 증세를 하든 어느 편을 선택하더라도 국민의 저항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단번에 선진국의 복지 수준을 따라갈 수는 없는 만큼 '중부담 중복지'를 추구하며 국민적 합의를 거쳐 세 부담과 복지 수준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 고령사회 코앞…복지지출·국민부담은 OECD '꼴찌'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국민부담률(2013년 24.3%),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2014년 10.4%)은 조사 대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에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현 복지 수준을 유지하기에도 국가 재정이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계속되면서 1인당 복지서비스 혜택을 늘리지 않는다 해도 복지지출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이를 감당할 재원이 확보되지 않았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일반 재정도 2030년대가 되면 위험에 빠질 것"이라며 "다음 정권이 되면 벌써 고령사회를 맞게 된다. 이에 적합한 세입 구조를 만들고, 대비책을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해 증세 논의에 본격적인 불을 지피기도 했다.

 

◇ "보편적복지 축소 우선…남유럽 사태 재현 안 돼"

 

복지와 증세 이슈가 쟁점화되면서 무상복지 축소로 대표되는 '선별적 복지론'을 주장하는 의견과 '증세 불가피론'을 지지하는 견해가 혼재하는 상황이다.

 

선별적 복지론 입장에서는 한국이 남유럽이나 중남미와 같은 재정악화에 빠지지 않으려면 복지 체계를 대폭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지금 복지지출은 재정이 더는 감당할 수 없다"며 "무상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정책이 이대로 간다면 그리스, 아르헨티나와 같은 나쁜 선례를 따라가는 셈"이라며 "복지가 많으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조세수입이 줄며 재정적자의 악순환이 끊이질 않는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증세는 할 필요가 없고, 또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홍기용 한국세무학회장도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선심성으로 베푸는 포퓰리즘 정책이 문제"라며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보편적 복지를 축소하고 맞춤형, 선택형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증세 카드를 꺼내들기보다 불필요한 복지지출을 줄여 세금 누수를 막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박종규 위원도 "무상보육·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 복지의 부담은 결국 다음 세대 젊은이들이 져야 할 것"이라며 "국민연금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다른 복지를 얘기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기본적인 복지부터 탄탄히 해놓고 무상 복지를 논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 "한국은 저부담·저복지 국가…증세 불가피" 반론

 

반면, 한국의 복지 수준을 현 수준보다 끌어올려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많다.

 

여당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증세 불가피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복지의 발전단계 수준을 복지 재정의 총량으로 구분하는데 한국은 명확하게 저부담 저복지 국가"라며 "중복 복지나 비효율화를 고치는 것은 맞지만 이를 고친다 해도 얻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재정이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증세를 안 하면 일본처럼 국채 발행으로 (증가하는 복지지출을) 메워야 하는데 이는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며 증세 주장에 힘을 실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도 "복지지출을 늘리려면 증세 밖에는 방법이 없다. '증세없는 복지'는 처음부터 신빙성이 없었다"며 "모든 사람이 조금씩 더 세금을 내는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복지 구조조정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 구조조정 주장이 나오지만 국민에게 줬던 것을 다시 빼앗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복지를 없애면 정책 일관성에도 금이 가고 정부도 신뢰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복지와 증세가 성장동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에도 이견이 많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복지 현금을 지급한 것을 흥청망청 쓴다면 발전이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복지가 늘어난다고 성장 동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맞지 않는 얘기"라며 "결국 복지지출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세 불가피론은 여당 내에서도 무게감이 커지고 있다. 나성린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국회 토론회에서 '중부담 중복지'를 내세우면서 "어떻게 증세할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고 말했고, 유승민 원내대표는 "여야가 증세 방침에 합의를 이룬다면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다"고 증세 논의에 불을 지폈다.

 

◇ "중부담·중복지가 적절…복지·조세 투명성 강화해야"

 

증세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복지 수준을 목표로 할지와 국민부담을 어느 선에서 정할지의 문제는 남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여당 내에서도 제기된 중부담 중복지론에 동의했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OECD의 복지 수준과 비교를 많이 하는데 우리가 당장 그 수준으로 가는 것은 재원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복지 지출 수준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결국은 중부담 중복지로 가야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 설득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복지와 조세 양쪽 모두의 투명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 입장에서 복지 재원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명확히 알게 해 자신도 혜택을 받고 있음을 잘 홍보하고, 꼼수가 아닌 제대로 된 증세 추진을 통해 국민을 직접 설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도 "정부가 복지국가 공약을 추진하는 방향은 옳다고 보지만 재원조달에 대한 노력을 제대로 안한 것이 문제"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담뱃값을 올리고,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중산층에게 세 부담을 지웠다면 동시에 재벌 대기업, 고소득자와 고액 자산가에게도 일부를 분담시켜야 한다"며 "법인세도 증세의 '성역'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각론에서는 의견이 엇갈리더라도 현행 세제와 복지정책을 개편해야 한다는 결론에는 대부분 전문가가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김동열 실장은 "국민 세금 부담을 늘리는 것은 언젠가는 국민이 받아들여야 하고, 공감대와 설득이 필요하다"며 "행정이 투명하게 집행되고,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혜택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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