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나무 주소
박해람

▲     © 최희 기자


 
 
벚꽃 나무의 고향은
저쪽 겨울이다
겉과 속의 모양이 서로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들이다
봄에 휘날리는 저 벚꽃 나무의 수취불명의 주소들이다
겨울 동안 이승에서 조용히 눈감는 벚꽃 나무
모든 주소를 꽁꽁 닫아 두고
흰빛으로 쌓였던 그동안의 주소들을 지금
저렇게 찢어 날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죽은 이의 앞으로 도착한
여러 통의 우편물을 들고
내가 이 봄날에 남아 하는 일이란
그저 펄펄 날리는 환한 날들에 취해
떨어져 내리는 저 봄날의 차편을 놓치는 것이다
 
벚꽃 나무와 그 꽃이 다른 객지를 떠돌 듯
몸과 마음도 사실 그 주소가 다르다
그러나 가끔 이 존재도 없이 설레는 마음이
나를 잠깐 환하게 하는 때
벚꽃이 피는 이 주소는 지금 봄날이다
******************************************
어젠 양수리 쪽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길가에 벚나무들이
처연할 정도로 눈이 부셔셔 차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팝콘 같은 꽃송이들로 제 그림자를 지우고 있었다.
20대 시절 윤중로 벚꽃 길 아련한 추억에도 잠겨보았던...
 
박해람 시인이 올봄과 함께 선 보인 두 번째 시집
‘백리를 기다리는 말’은 가히 시인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교과서적인 시편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화자의 철학적인 심미안에 무릎을 몇 번이고 치며 밤 새워
탐독했던 보석 같은 시들 속에서 시인으로서 반성과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에 다시 빠져보는 일기장에 기록 된
시간들이었다. 그 중에서  이 환장 맞을 봄날에 어울리는
위 시 한 편을 함께 맛보고 싶어서 소개한다.
몸과 마음이 주소가 다른 날들을 살아야 하는 바쁜 나의
삶 속에서 정말 화자의 말처럼 ‘이 존재도 없이 설레는 마음이
나를 잠깐 환하게 하는 봄날이다.'
 
도무지 책상은 어지럽고 업무는 뜬구름이 되고,
저 벚꽃들이 너무하다.
추억의 주소나 더듬는 몹쓸 봄날이다.
(최희)
************************************************
박해람 시인
1068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8년 <문학사상>등단
시집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
      『 천리를 기다리는 말』
‘천몽’동인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