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범 교수, 무도의 길
이윤범 교수, 무도의 길
  • 이윤범 칼럼
  • 승인 2015.09.18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 그 귀한 생명이 때로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수년 전 소름끼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슬람 과격파들에게 인질로 잡힌 서방인이 칼로 참수를 당하는 동영상이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그 동영상을 보고 난 후 며칠 동안 잠을 설쳐야했다.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 울부짖음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인간은 얼마나 잔인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지금도 머리에 맴돌고 있다.

 

며칠 전 심야 TV에서 격투기 경기를 봤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경기의 열기가 달아오를 즈음 로우킥을 하는 선수의 정강이가 부러졌다. 덜렁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선수와는 대조적으로 승리를 자축하는 선수는 양손을 치켜들고 링을 돌고 있었다.

 

관중들은 아예 다리가 부러진 선수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승자만을 위해 환호하고 있었다. 옛날 로마시대의 검투사의 운명이 연상되었다. 검투에서 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였다. 죽어가는 검투사에게는 아예 관심도 없고, 승리한 자만을 위해 관중은 모두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인류역사에서 투기 경기는 오래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권투(복싱)가 전 세계의 인기 종목이 되었다가 쇠퇴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더욱더 잔인한 UFC같은 격투기가 인기 종목이 되었다. 자신이 연마한 술기의 종목에 관계없이 링에 올라와서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오직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선(善)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경기에 임하기 위해서는 무슨 종목이던지 무술을 연마해야 한다. 그냥 준비 없이 출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무술은 상대와 경쟁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니 항상 상대를 쓰러뜨려야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관계에 대한 의식이 싹틀 수가 없다.

 

흔히 무술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술은 기술을 익히는 단계, 무예는 아름다움의 경지인 예술의 차원, 무도는 무술을 통해 도(道)를 향해가는 것이라고 한다. 오직 상대를 제압해야 하고, 죽음까지도 내몰고 있는 상황까지 진행되는 투기 경기는 강한 자를 만들 수는 있어도 분명히 장자가 말하는 “도(道)”의 길은 아니다.

 

장자는 인생의 처세에서 각자의 분수를 깨닫고 그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 가장 보신할 수 있는 철학이라고 하였다. 장자에게는 뛰어난 사람이나 부족한 사람이나 차별이 없다. 심지어 사람과 자연과도 구별이 없다. 자연과 인간, 현실과 꿈이 일체가 되는 경지가 그가 설정한 “도(道)”의 경지이다.

 

장자의 무위자연이란 인간은 개인의 지나친 욕망과 감정을 내려놓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인간의 참된 본성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장자가 주장하는 “도(道)”는 경쟁사회에 찌들어 신음하는 우리 현대인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장자가 말하는 “도(道)”를 “무도(武道)”와 연관시켜 본다면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상대를 적으로 대하고 있는 한, 기술 자체도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오직 상대와 내가 일체가 되어야 한다. 상대뿐만 아니라 술기 자체도 자신과 일치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연마하는 무술은 싸움의 도구가 아니라 수행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무도의 길은 고행의 길이다. “장이”의 길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한 가지 직업이나 기술에 전념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한 후, 그 일에 정통한 사람을 순수한 우리말로 “장이”라고 하였다. 즉 사람이 전력을 다하여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정신의 소유자를 말한다. 무도는 이런 장인정신을 소유한 “장이”의 길이 되어야 한다.

 

필자도 평생 여러 가지 무술을 번갈아 가면서 수련해봤다. 최근에는 “아이키도”라는 일본에서 탄생한 무술을 수년째 수련하고 있다. 일본과 감정이 좋지 않은 우리는 일본무술이라고 해서 왠지 거부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세계화의 영향으로 전 세계의 무술이 국경을 초월하여 전파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일본 무술이라 크게 거부할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이미 자리 잡은 무술 중에는 일본 무술이 무수히 많다.

 

비록 초보자이기는 하지만 아이키도를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 “장이”가 되려는 길의 초입이라도 흉내 내 보고 싶은 것이다. 시합이 없는 아이키도는 기술 운용에서 상대와 충돌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와 일체가 되어야 발전이 있다. 그런데도 이 길을 가다보면 좌절감이 너무 크다. 기술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장자가 말하는 “도(道)”의 길을 가는데 어쩌면 이 수련도 그 한축을 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강습회를 하러 오는 팔순의 노인들을 대하다 보면 저절로 감탄스럽다. 우리를 어린애처럼 다루는 공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나이에 흔히 나타나는 노인 특유의 구부정한 외모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그 응용력이 자유자재로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장이” 그 자체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런데도 모두 초보자라며 겸손해 한다. 무도의 길은 자신을 다스리는 겸손이 그 초입을 담당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