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희 기자


 

이면

안영희

 

맛 모조리 빨린 후

그 물고기는 건져 버려지고

식탁을 일어서며 말한다 사람들은

칼국수 맛이 참 좋군!

맛을 낸 것은 정작 퉁퉁 분 그 몸뚱어린데도

멸치는 없다 그 어디에도 그는 없다 그 어디에도

보이는 것은 겉장뿐이고

표지는 여하튼 빛나야 하니까

혼신 너덜대도록 쓰고 존재 몽당 묵 되도록 생을 갈아도

가짜라도 반짝대는 장식 한낱 갖지 못한

이승에서의 그의 용도는 멸치국물

이 세상 부동의 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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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부터 가을비도 아니고 겨울비도 아닌 비가 흩뿌리며  쌀쌀하다.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이 하루의 시름을 달래준다. 멸치 다시마 국물맛이

더없이 시원한데 정작 국물에선 멸치도 다시마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국물의 이면을 생각한다.

 

이른 가을 아침 말끔한 거리를 걷노라니 환하게 씻긴 거리에 발걸음이

상큼하다. 매일 다니는 길. 매일 타고 다니는 전철, 무심히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땀이 있고 눈물이 있음이다.

겨울 문턱에서 이면, 즉 속내를 들여다볼 줄 아는 그윽한 마음 한 자락

그리운 날이다. 세상의 따듯한 온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멸치 같은 이면들,

제 한몸 우려내 기꺼이 맛난 국물이 되어주는 멸치 같은 이 세상 부동의

이면들을 생각하며 숙연히 고개 숙여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면'이라는

국물 진한 위 시의 이면인 안영희 시인에게 이면의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최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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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희 시인(도예가. 낭송가)/

 광주광역시 출생

1990년 봄 시집『멀어지는 것은 아름답다』발표로 시작활동 시작

시집/『멀어지는 것은 아름답다』『물빛 창』

『그늘을 사는 법』『가끔은 문밖에서 바라볼 일이다』 

『내 마음의 습지』

안영희 도예개인전/흙과 불로 빚은 시(2005년 가을 인사동 경인 미술관)

<낮게 그리고 느리게>시동인 

현 <문예바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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