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은 어떤 문제 하나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려지리라고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현해탄을 사이에 둔 두 나라는 옛날 옛적부터 아웅다웅해 왔으며 아직도 그 여운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번에 군위안부 문제를 타결했다고 해서 그 이외의 산적한 현안들이 모조리 풀릴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그동안의 문제점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봐야만 일리 있는 말이 될 것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역사’를 놓고 일본과의 많은 접점을 찾아야만 할 일이 쌓이고 쌓였다. 제일 첫째는 독도영유권 관련 문제다.

 

이미 실효적으로 독도를 관장하고 있는 우리로서야 이 문제를 분쟁으로 보지 않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모든 수를 쓰더라도 분쟁지역화 하는 것을 제일의 모토로 삼고 있다. 그것은 독도문제를 국제재판소에 넘기기 위한 수작이다. 그러나 분쟁중인 두 나라가 어떤 문제를 국제재판에 심판을 맡기려면 양국이 똑같이 동의할 때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에서 동의하지 않는 한 독도문제가 국제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은 1%도 없다.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를 통하여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이름)의 소유를 일본에 귀속한 것처럼 허장성세로 떠벌이고 있으나 그 전에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독도의 조선령을 확정했기 때문에 아무 의미도 없는 고시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 시마네현 고시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다케시마의 날’을 기념하는 등 온갖 허튼 수작에 여념이 없다.

 

둘째로는 징용으로 끌려갔던 수십만에 이르는 근로자들의 노동의 대가문제를 1965년 한일협정에서도 거론하지 않고 넘어갔다. 이들 근로자들은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징집되어 일본 군수물자 생산 공장이나 전쟁터에서 탄약운반 등 목숨을 내건 노동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들을 고용했던 회사들은 지금도 일본의 생산능력을 과시하는 세계적 시설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으면서도 근로자들의 노동의 대가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버틴다.

 

심지어 소송을 제기한 일부 근로자들에게 근로수당을 당시의 화폐가치만으로 지급하라는 얼빠진 판결을 일본법원이 자행하는 모순을 보였다. 당시의 수당이라면 70년이 넘은 현재의 가치로 환산해야 된다는 것이 모든 법치국가의 규칙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액수대로만 지급하라는 판결은 일본법원이 한국의 근로자를 조롱한 것에 불과하다. 아주 나쁜 태도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가 저질렀던 전쟁의 여파로 생겨난 문제이기 때문에 관계회사들과의 건전한 협의로 해결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줘야만 할 것이다. 위에 든 두 가지 문제는 그동안 한일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융화를 위해서 꼭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안이다. 다행히도 군위안부라는 반인권적이고 반윤리적인 감성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양국의 외교사상 역사적 쾌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참담한 고통을 겪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어떠한 사과를 받더라도 가슴에 응얼진 돌덩이 같은 분노를 씻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처참한 생활을 견디며 광복이후에도 앞에 나서기를 주저했던 할머니들의 고통을 뉘라서 쉽게 풀어줄 수 있겠는가. 고령에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어 현재 46명만 생존해 있다.

 

이 분들의 한은 하늘에 솟구치고 있지만 그나마 일본수상이 정식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깊은 사죄’를 드린 것은 지금까지의 자세를 180도 뒤집은 사건이었다. 아베수상은 우경화를 이용한 일본의 군국주의 복귀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전 세계민의 증오를 불러일으킨 당사자다. 걸핏하면 전범들의 소굴인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거나 봉물을 진상하고 평화헌법의 해석을 달리하여 ‘전쟁 할 수 있는 일본’으로 돌이키고 있으며 입만 열면 일본극우세력을 옹호해 왔다.

 

한국에 대해서도 정상회담을 애원할 때에만 목소리를 낮췄지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들쑤셔놓고, 불을 댕기는 몹쓸 모습으로만 비춰왔다. 그의 가계조차 전범으로 뭉쳐진 집안이라는 확실한 증거까지 제시되었다. 따라서 장기집권 태세에 들어간 아베정권이 있는 한 한일관계의 정상화는 어렵다는 우려까지 있었으나 세밑에 갑자기 외상을 보내어 전격적인 사죄와 보상을 약속했다.

 

이는 박근혜정부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굳세게 이 문제를 밀어붙인 결과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중국의 영향력을 걱정해야 하는 미국이 한일 간의 갈등이 미칠 파장을 크게 우려한데서도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서로 반목한다면 그것은 미국의 동북아정책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의명분으로 보더라도 절대적 선(善) 위치에 있는 한국과 악(惡)의 위상을 벗어날 수 없는 일본의 처지는 미국의 외교능력의 저울대가 어디로 기울 수밖에 없겠느냐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양국정부가 이 문제를 타결했다고 하더라도 일부에서 반대와 비판은 있을 수 있다. 이는 정부가 책임지고 설득할 문제다. 외교문제를 완전무결한 승리로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미조리 함상에서 ‘무조건항복’을 했던 일본도 일본왕의 존재만은 고수했다. 이제 한일의 미래는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은 일본이 억지주장을 펴지 않고 열린 마음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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