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시집『툭,의 녹취록』출간한 금시아 시인의...

▲     © 최희 기자


 

숨은 말

   금시아

 

내게는 숨어버린 말 하나가 있다

좀처럼 낯설어지지 않는

아무리 서둘러도 닿지 않는 말 하나

 

외출할 때나 집을 나설 때면 꼭

문밖에서 먼저 기다리는 말이 있었다 항상,

먼저 문을 열고 내가 뒤늦게 문을 닫았던 기억이 있다

문밖에서 종종거리다 다그치면

단추 구멍이 어긋나거나 화장이 삐뚤어지거나

미처 잠그지 못한 밸브가 있었다

 

팔짱 끼듯 천연덕스럽게 친절한 말

입술 끝에서 온종일 제일 바쁜 말의 안쪽 말

성격이 급해 쉬 붉어지는 말의 반대쪽 말

 

외출 준비를 하다

문밖에 귀를 기울일 때가 있다

부르는 소리 채근하는 소리 없는데도 살짝

문을 열어놓는다

어떤 말이 종종거리는 것처럼 서두른다

그럴 때는 입술이 삐뚫어지고 앞섶 길이가 어긋나고

점검하던 밸브 하나 여전히 숨고는 한다

 

너무 멀어 들리지 않는 환청처럼

잠깐 돌아보게 하는 말

머뭇거림이 있어 성급할 때마다 바쁠 때마다

문득 나를 붙잡는 말

현관문 앞 덩그렇게 비어있는

얼른 와,의 다른 세상의 말 하나

천천히 와

 

-시집 『툭의 녹취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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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출간한 금시아 시인의『툭,의 녹취록』(도서출판 달샘)에 수록된 시 한 편 소개한다.

누군가가 잃고 나서야 새록새록 알게 되는 의미가 있다.

항상 옆에 있어서 소중하게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 있다.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 중에서도 백년해로 이루지 못하는 斷腸의 인연,

나는 이처럼 슬픈 시를 본 적, 아직 기억에 없다.

심장이 턱 멈추듯 아프다.위 시를 몇 번이고 음미하다가 어느새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주는 무언의 위로를 느꼈다.

성격이 급한 남편이 먼저 문밖에 나가 아내를 빨리 나오라고 채근하는 장면은 너무나 흔한 장면이지만 그 사람 떠나버려 홀로 살아가는 화자는 외출 준비하다가 환청 같은 목소릴 듣는다.

‘빨리 와’ 대신 ‘천천히 와’로 피안의 목소릴 듣는다.

이제는 다 알 것 같은 그 사람의 마음이 이 한 마디에 함축되어 있음이다.

‘있을 때 잘 해’라는 흔한 말이 자꾸 귓전에 맴맴 돈다.

 

금시아 시인의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시인의 문운이 활짝 열리길 기원하는 마음이다.

(최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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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아 시인/

광주 광역시 출생

2014년 월간 <시와표현> 등단

월간 <시와표현> 편집 차장

시집/ 『툭,의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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