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희 기자


 영화다방 의자

이수니

 

 우리 동네엔 반세기를 버티어 온 옛날 다방이 있어요, 미성년 출입금지도

금연구역도 없는 영화다방, 삐걱거리는 낡은 의자가 주인 대신 손님을 맞고

있어요

 

 담배연기 끼리끼리 수군대고, 나는 모퉁이에 앉아 한때 영화榮華를 꿈꾸며

로즈 담배에 별을 붙여 쏘아 올리기도 했어요. 연기는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며 냄새를 풍기기도, 소문을 흘리기도 해요. 레코드에선 옛 시대를 누볐

던 유행 지난 노래들이 녹슨 추억을 따라 삐꺽거리며 리듬을 맞추고 있어요.

 

 잊히면 피어나는 게 추억이고, 꽃이라고, 사랑에 멍이든 늙은 마담의 넋두리

는 담쟁이넝쿨처럼 방향 없이 다방 벽을 타고 올라요. 벽에 걸린 뻐꾹이 시계

는 시간마다 울어대고요, 쌍화탕에 동동 띄운 보름달 같은 영자 얼굴 뜨겁게

가물거리고요 재떨이엔 애꿎은 꽁초 엉덩이만 비벼댄 흔적이 수북해요.

 

이제는 야간업소를 전전하던 삼류가수도 한물간 장발머리 화가도 흔적을

감추고 벽에 목을 건 빛바랜 그림만 텅 빈 의자를 응시하고 있어요.

 

다방 레지 미스 김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단골손님 김 사장도 메모꽂이에

쪽지만 남기고, 낡은 의자들은 오늘도 텅텅 빈 영화를 꿈꾸며 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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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지방 출장을 갔다가 작은 커피숍에 잠시 앉아있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80년대의 실내 분위기에 어르신 서너 분이 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린 날 아버지 찾으러 가끔 갔던 정 다방 미스 정 이모는 없지만 복스럽게

생긴 마담이 함께 앉아 엽차 주전자를 자꾸 기울여주는 정경에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뇌리에서 울리고 있었다. 고향에 온 듯했던 그 마음은 나도 이제 나이 들어가고 있는

탓이려니 하며 쌍화차를 마셨다.

이수니 시인의 영화 다방도 떠올리며... 오랜만에 그 옛날 찻집에 앉아

나도 실 없는 농담 같은 유행가를 우물거려보았다. 당당히(?) 앉아있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음은 내 나이 탓이려니 하며 쌍화차가 화끈 달아올랐다.

그 옛날의 그 다방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움의 한 축으로 남은 그 찻집의 그윽한 풍미가 그립다.

그래도 아직은 어딘가에 이렇게 우리들의 영화 다방  그 의자는 있다.

그때 그 시절 우리들의 오빠, 아빠들의 낭만,

그리움이 기다리는 그 의자!

영화 다방은 있다.

(최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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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니 시인/

2015 월간<시와표현>등단

<굴포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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