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기부양 대책 등을 논의하기 위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중앙뉴스=신주영기자]유일호 경제팀이 출범 21일 만에 경기부양 카드를 빼들었다.

 

연초부터 미국·중국의 G2 리스크로 신흥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전격 도입하는 것으로 추가 부양에 나섰다.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개별소비세 인하 등 작년 하반기에 시행한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사라지는 올 1분기에 소비 절벽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유일호 경제팀이 받아들 첫 성적표여서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수출, 소비 등 1월 지표들이 불안해 이대로 가면 분기 성적표 역시 좋을 수가 없다.

올해 3.1% 성장을 목표로 삼은 유일호 경제팀의 마음이 다급해진 이유다.

 

◇ 대내외 악재·악재…유일호팀 결국 3주 만에 부양카드 꺼내 들어

 

정부가 추가로 경기 보강대책을 내놓은 것은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정책 효과가 소멸되면 경기가 위축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첫 달 수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5%나 줄어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8월(-20.9%) 이후 6년5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지난해 하반기 반짝 성장한 내수도 올해는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다.

 

개별소비세 인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정책 효과에 힘입어 민간소비가 지난해 3분기에 1.2%(전기 대비), 4분기 1.5% 성장했지만 정책 효과가 소멸되는 올해 1분기엔 소비 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연초부터 돌출한 대외 리스크도 한국 경제엔 부담스러운 요소다.

미국·중국의 주요 2개국(G2) 리스크가 불거진 가운데 유럽에 이어 일본도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열며 추가 경기부양에 나섰다.

 

엔저가 심화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수출에 더 강력한 한파가 몰아닥칠 수 있다.

여기에 북한이 지난달 4차 핵실험을 단행한 것도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 재정 조기집행으로 1분기 성장률 0.2%p 올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빼든 첫 번째 카드는 재정 조기집행이다.

애초 정부는 올해 1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조원 많은 138조원의 재정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정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6조원을 1분기에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중앙재정(96조원)에 지방재정(42조원)과 지방교육재정(6조원)까지 합치면 모두 144조원이 1분기에 쓰인다. 1분기 조기집행률은 당초 29.2%에서 30.0%로 올라서며, 상반기에 올해 재정의 58%가 투입된다.

 

정부가 재정 조기집행률을 더 높이기로 한 것은 지난해 세금이 부동산거래 활성화와 담뱃세 인상 등으로 전년보다 잘 걷혔고, 1분기에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정 조기집행으로 1분기 성장률을 0.2%포인트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는 "1분기 성장률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해야 경제 탄력이 떨어지지 않고 2∼4분기에도 이어질 수 있다"며 "다른 여건에 변화가 없다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 전망치인 3.1%에 근접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반기에 재정을 집중 투입하고 난 뒤 하반기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면 쓸 돈이 부족해 재정의 경기 보강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재 경기 상황을 보면 추가 부양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재정이 너무 빨리 소진되면 예상치 못한 충격이 왔을 때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 조기집행으로 경기를 떠받치다가 어려워지면 또다시 '추가경정예산 편성' 카드가 등장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친 이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추경 편성이) 그 정도로 불가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 자동차 개소세 인하 '재등판'

 

정부의 두 번째 카드는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미시 정책들이다.

 

가장 큰 효과가 기대되는 것은 자동차 개소세 재인하다. 정부는 지난해 8월 27일부터 연말까지 4개월여간 개소세를 기존 5%에서 3.5%로 인하하는 정책을 폈다.

 

개소세 인하 종료 첫 달인 지난달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내수 판매량이 작년 12월보다 40% 가까이 줄어드는 등 충격파가 나타나자 올해 6월까지 다시 개소세를 3.5%로 낮추기로 한 것이다.

 

올해 1월 1일 이후 제조장에서 반출되거나 수입 신고하는 차에도 소급적용되기 때문에 작년부터 따지면 10개월여간 개소세 인하가 이어지는 셈이다.

 

이밖에 정부는 칭다오·광저우에서만 발급하던 중국 단체관광객 전자비자 발급을 중국 전역의 공관으로 확대하는 등의 정책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소비를 떠받치기로 했다.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의 예산 조기집행 규모를 기존 4조원에서 5조원으로 1조원 늘리고, 설비투자 가속상각 대상을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1분기 소비·재정절벽을 막기 위한 경기보강 대책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단기적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부양책은 대부분이 기존 대책의 재탕이거나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기 때문에 1분기 소비 절벽을 막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자동차 개소세 인하의 경우 2분기 정도가 돼야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조기집행으로 재정 지출을 늘리면 재정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으면서도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성장률을 높이려면 내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상황에서 중국도 위안화 절하를 하려 한다면 우리 수출이 올해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며 "환율 정책 등을 써 수출을 높여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산업구조 재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