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일호 경제부총리(왼쪽)와 이주열 한은 총재

[중앙뉴스=신주영기자]정부와 한국은행이 기업구조조정 재원 조달을 위한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를 놓고 충돌하는 가운데 두 기관의 수장인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은 총재가 나란히 같은 해외출장을 떠나 현지 회동을 통해 담판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2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유일호 부총리는 오는 3∼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릴 '제19차 동아시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와 '제49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차 1일 출국했다.

 

이주열 총재도 같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일 정오께 출국한다 이번 출장은 아시아지역 국가 간 경제협력을 증진하고 금융시장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지만, 구조조정 재원마련 방안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현지에서 회동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유일호 부총리와 이주열 한은 총재가 현지에서 만나 구조조정 재원 조달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고 협력을 모색할 방안을 도출해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두 기관은 공식적으로 두 수장간 회동 일정이 잡힌 것은 없다고 부인했지만, 비공식적인 만남은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번 출장 기간 일정이 각각 잡혀있는 기자간담회에서 유일호 부총리와 이주열 총재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는 한국시간으로 3일 정오에, 이 총재는 5일 정오에 각각 기자단과 간담회를 열어 구조조정과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양측의 이런 타협 가능성은 구조조정이 시급한데 정부와 한은이 책임을 전가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난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재정의 역할이라는 입장을 밝힌 이후 박근혜 대통령까지 필요성을 강조한 한국형 양적 완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치자 내심 당혹스러워하며 해명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한은은 29일 오후 해명자료를 내고 "윤 부총재보의 발언은 재정과 중앙은행의 고유 역할을 원칙적인 수준에서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즉 "중앙은행이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발권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윤 부총재보의 발언은) 대통령 말씀을 반박한 게 아니다"면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논의에 참가하기로 했으니 얘기를 해봐야 한다"고 한발 물러서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은 물가와 화폐가치 하락 등 부작용을 초래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형평성과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논란을 불러오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게 한은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더구나 추가 경정예산 편성이나 관련법 개정이 어려워 보이자 부작용이 예상되는 발권력 동원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정공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한은의 이런 입장 표명이 정부와 서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공을 떠넘기는 것으로 비쳐 비난의 여론이 고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재정적자에 대한 비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한은도 물가와 통화정책에 책임이 있는 만큼 궂은일을 떠안지 않으려는 이기주의가 아니냐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또 해운·조선 등 한계상황에 처한 업종의 구조조정이 한시가 시급한데 정부와 통화 당국이 서로 책임만 전가하며 세월만 허송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점도 한은엔 큰 부담이다.

 

이런 식으로 당국이 책임을 떠넘기다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 더 큰 문제로 비화할 경우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한은 모두 책임 전가라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결국 두 당국의 수장이 해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두 수장의 이번 출장이 주목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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