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지웅 시인


 

좀비극장

박지웅

 

  첫 장면이 죽여요 비명에서 아름다운 맛이 나요

  몸부림칠수록 침이 고여요 먹지 않을 때

  우리 입은 절규하듯 열려 있어 이 마을 저 마을 습격해요 닥치는 대로 물어뜯어요

 

  감염된 슬픔은 사후에 명랑해져요 어깨 뒤틀고 되살아나 건강하고 이 유쾌한 사후세계를 환영해요

  우리는 두 팔을 앞으로나란히하고 걸어 다녀요 구령은 뒤에서 들리지요 사실은 위에서 내려와요 솔직히 속이 뒤틀려요

 

  앞서 걷는 당신이 어깨를 들썩여요 당신이 흐느끼는 순진한 이유를 알아요

  그는 살았을 적 탐욕이 많았어요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돼요 식욕은 자연스러워요

  먹고 먹히는 어른들의 세계는 단순해요

  죽음의 발육이 시작되는 아귀의 동굴에서 우리는 먹으러 왔어요, 비틀거리며 서로 배 속으로 들어가요

 

  끝 장면이 또 죽여요. 앞자리 여자가 휘익 돌아봐요

  나는 뒤에 있다가 갑자기 앞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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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출간한 박지웅 세 번째 시집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를 읽다가 위 시에 눈길이 멈췄다. 딱 요즘 상황인 것 같아서 마음이 참담했다. 얼마 전 흥행했던 영화 『부산행』의 좀비들보다 더 사악한 무리들이 인두껍을 쓰고 이 나라를 농단하는 초유(?)의 사태를 삼척동자도 한탄하는 현실이다. 차라리 꿈이라면 좋겠다.

  정국이 아수라장이다. 창피해서 못견디겠다. 나 역시 좀비나라의 한 좀비인지도 모른다. 극심한 자괴감에 시인의 시가 한 줄기 위안을 주었다. 역시 박지웅 시인은 이번 세 번째 시집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맛깔진 시들을 맛보게 해 주었다. 그의 이번 시들이 훨훨 날아 어느 님들의 가슴에 시원한 생수가 되었음 하는 마음이다. 박지웅 시인은 올해 제11회 <지리산문학상>을 받은 시인이기도 하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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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시인/

1969년 부산 출생

2004년 <시와사상> 신인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2016년 제 11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시집 / 『너의 반은 꽃이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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