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어디에서는 식인(食人)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 있다는 설이 있지만 확인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식인문제는 꾸준히 전해져 온 얘기에 속한다. 오래 전 얘기지만 유명한 탐험대가 극지에 들어갔다가 조난을 당했던 일이 있다. 구조대는 올 생각을 하지 않고 고립된 탐험대는 먹을 것이 모두 떨어졌다. 그들 중에서는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나왔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국에 돌아갈 수 있었다. 국민들은 처음에 영웅으로 대접하고 환영했다. 그러나 나중에 죽은 사람들의 시신에 대해서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생존자의 입장은 난처해졌다. 일부 생존자는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고 연명할 수 있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동정도 했지만 극열하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생존자들의 대부분은 그 문제에 대해서 끝내 입을 다물었지만 세상에 준 충격은 컸다. 인간이 인간을 먹을 수 있다는 극한상황이 그들을 감싸주기도 했으나 생존자들은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죽은 사람처럼 지내야 했다. 탐험대원들이 아무 것도 없는 얼음벌판에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라고 하지만 편안한 인간사회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치부되었고 결국 살아왔지만 죽은 것만도 못하게 된 셈이다.

요즘도 간혹 잔악한 범죄자 중에서 식인행태를 보이는 사람이 나온다. 참으로 가련한 일이지만 대부분 정신병과 관련된 사람 아니고서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번에 보도된 일본군의 조선인 식인과 집단학살극에 대해서는 비록 오래전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독일의 히틀러, 이태리의 무소리니와 더불어 추축국을 형성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처음에는 그들의 독무대였다. 세계는 그들의 분탕질에 정신을 뺏겼다. 어느 곳 하나 화약 냄새가 진동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일본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일대의 수많은 나라를 무력으로 침공했다. 인구 많은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 전쟁이다. 훈련 받은 병사가 많아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일본은 일찍이 명치유신을 기점으로 철저히 서양 흉내를 내면서 문물을 수용한 덕에 무기면에서 타국을 압도했다. 이미 청나라를 굴복시켰고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까부순 여력으로 동남아의 무지렁이를 초토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간이 부을대로 부어오른 일본군은 마침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일전쟁의 단초를 열었다.

허를 찔린 미국이 국민과 군의 충격이 완화된 뒤 반격을 시작한다. 태평양을 사이에 뒀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은 비행기와 군함이 주 무대였고 널따란 태평양상의 섬을 선점하는 일이 아주 중요했다.

섬을 군용기와 군함의 기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공격의 시간을 단축시키고 진격을 저지하는 중요한 방패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태평양에는 유명한 마셜제도가 있다. 여기에도 조선에서 강제로 끌어온 조선인 노무자들이 수천 명 일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800~1000여명이 동남쪽 끝에 있는 밀리환초로 이송되었다. 비행장 등 군사시설을 짓기 위해서다. 이 때 일본군은 미군 공격으로 모든 보급이 끊기고 사실상 고립된 상태였다. 먹기 위해서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지었다.

토질과 기후가 좋지 않은 곳이어서 병자도 속출했다. 전쟁은 이미 미군들이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하여 일본의 패색이 짙을 때였다. 1945년 2월28일 체르본 섬에 있던 조선인 120여명이 감시목적으로 파견 나와 있는 일본군 11명중 7명을 숲속으로 유인하여 살해하고 미군에 투항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이웃 루크노르섬에 주둔하던 일본군 15인이 기관총으로 완전무장하고 토벌대를 구성해 쳐들어왔다.

100여명의 조선인이 집단학살을 당한 것은 물론이다. 이 때 높은 야자수 위로 피신한 몇 사람이 생존하여 증언한 것이 이번에 밝혀졌다. 정부차원에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2006년부터 3년여간 조사를 벌여 ‘밀리환초 조선인 저항사건과 일본군의 탄압진상보고서’를 공개한 것이다. 우리는 이 보고서를 대하며 뜨거운 눈물로 우리 선조들의 저항정신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집단학살 속에서도 살아 남아 그 진상을 증언한 용기에 대해서도 새삼스러운 감사를 올리고 싶다.

게다가 일본군의 야만성에 다시 한번 몸서리쳐진다. 조선인의 집단저항을 저지하면서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 먹었다는 것도 용서받지 못할 만행이지만 고래고기로 속여 같은 핏줄인 조선인에게도 먹였다는 사실은 천인이 공노할 일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나마 생존자들이 있었기에 증언을 들을 수 있었고 조국이 광복을 이뤘기에 정부조사로 진상이 밝혀진 것은 참으로 의의 있는 일이다. 731부대의 악명을 남긴 일본군이 저지른 또 하나의 야만극이 밝혀진 것에 대해서 일본정부는 사과하고 배상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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