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각급 선거를 치러 정권의 향방을 좌우한다. 위로는 대통령 선거를 비롯하여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원 선거 등 많은 선거를 통해서 권력이 오락가락한다. 선거에 진 사람은 서러워하고 이긴 사람은 기고만장한다. 승패의 갈림길에서 생명과 재산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후보자들이 패배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다. 또 후보가 된 사람은 어떻게 하더라도 승리하기 위한 방편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 돈을 쓰는 일이다. 돈이란 없는 사람에게는 쓰기가 어렵겠지만 있는 사람에게는 펑펑 쓸 수가 있다. 조직을 위해서 쓴 돈도 있지만 홍보와 선전을 위해서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이처럼 돈이 난무하면 선거 분위기는 흐려질 수밖에 없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위화감이 극도에 달하게 된다.

이를 규제하는 것이 선거법이다. 선거법은 세계 각국에서 모두 시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선거를 통해서 정권의 향배를 가름하면서도 선거법을 따로 제정하여 시행하는 것은 아니고 형법 등 죄를 물을 수 있는 법률을 활용한다. 우리나라도 한 때는 그렇게 해왔지만 정당을 관장하는 정당법과 함께 선거법이 생긴 지 꽤 오래되었다. 여기에 정치자금법까지 덧붙여 명실 공히 정치규제를 목적으로 한 삼법(三法)으로 군림한다.

대체로 선거법이나 정당법, 정치자금법은 규제 투성이다. 된다는 것은 별로 없고 안 된다는 것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안 된다는 것이 많다보니 어느 코에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선거가 임박하면 후보자 진영에서는 선거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선관위에 묻느라고 정신이 없다. 콜라 한 병을 받더라도 신고를 하지 않으면 불법이 되도록 되어 있는 선거법 규정을 곧이곧대로 지켰다가는 선거도 치러보지 못하고 끝날 판이다.

선거법 중에서 맹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조항을 하나 든다면 선거소송과 관련된 문제다. 상대후보가 불법을 저질러 당선했다고 생각되면 선거무효나 당선무효를 주장하며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 때 상당액의 정해진 인지(印紙)대금까지 납부해야 하는데 피고는 ‘선거관리위원회’다. 이것은 당선을 공고한 기관이 선관위이기 때문인데 상당한 혼선과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생긴다.

다시 말하면 선관위는 선거를 주관하며 부정선거를 엄격하게 잡아내는 역할을 하는 기관인데 불법선거를 했다고 추정되는 후보가 당선되고 이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었을 때는 선관위가 당선자를 위해서 모든 비용까지 물어가며 변론을 해야만 한다. 대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기각이 되었을 때는 별문제지만 당선 또는 선거무효로 판정이 날 때에는 불법 당선자를 위해서 불법이 아니었다고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다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이 문제는 소송의 당사자를 ‘당선자’로 개정하는 것이 올바른 법운용이라고 생각된다. 또 하나 지적하자면 과거 우리나라 선거는 모든 선거에서 합동연설회를 개최하여 후보자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제공했다. 현행 선거법은 이를 없앴다. 돈 많은 후보가 청중을 동원하여 분위기를 흐리게 만들고 일방적인 자기선전을 하는 기회를 안 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길거리 유세는 무한정으로 허용했다.

결과는 뜻대로 되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길거리 유세는 아예 귀 기우려 듣는 사람이 없고 후보자도 나오지 않는다. 녹음방송만 틀어놓고 만다. 선거는 축제의 장이 되고 신바람이 나야만 정치가 활성화되는 법이다. 돈은 묶고 입은 풀어준다는 취지는 그럴듯했으나 풀어준 입은 열어봐야 효과가 없고 묶었다는 돈은 음성적으로 난무할 수밖에 없는 선거판이 된다. 합동유세를 하지 않으니 상대와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돈을 풀어 조직을 강화하는 일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선거운동 방법인 합동유세는 오히려 동(洞)과 면(面)마다 매일 시행하여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이 더 필요하다. 매일 합동연설을 하려면 돈쓰는 일이 대폭 줄어들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번에 청목회 사건에서 보듯이 정치자금법의 맹점도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 기업과 단체의 기부를 금지하고 개인만 5백만원으로 상한선을 정한 것은 불법적인 소액기부를 장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명제가 불필요한 소액헌금은 불법정치자금의 온상이다.

정상적인 정치를 하려면 가능한 한 더 많은 국민들이 내는 소액을 모으는 일이 좋겠지만 이번처럼 불법적으로 운용되는 일이 어디 이번뿐이겠는가. 국회의원들이 입법로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입법에 대한 의견을 국회의원들에게 말하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다.

문제는 대가성이 다분한 로비다. 여기서 편법에 의한 정치자금이 오고간다. 그 물꼬를 터준 것이 소위 소액헌금이다.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의 맹점은 수없이 지적된다. 이를 국회에서 그때그때 적절하게 개정하는 것이 정도다. 나중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나서봐야 소용없다. 자신의 이익보다 애국심으로 임해야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