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워킹 홀리데이’, 두산아트센터, 분단과 DMZ, 휴전, 주체성, 징병제 극복

▲ 배우들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마주칠 수밖에 없는 전쟁과 분단의 현실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체험하고 증언한다. 사진=박효영 기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이경성 감독은 사람들이 분단 국가에 사는 것을 인식하지 못 하고 산다는 점에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분단의 잔재에 익숙해져 냉전적 군사안보의 동원 체제에 그저 ‘타자’로 살아가지만 그들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싶었다는 것이 이 감독의 연출 방향이다. 

 

연극 ‘워킹 홀리데이(Walking Holiday)’가 베일을 벗어던지고 첫 선을 보였다. 7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apce111’에서 워킹 홀리데이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작은 화면 속 사람들이 길을 걷고 있는 장면이 나오면서 연극이 시작된다. 그들은 끊임없이 걸으며 오감을 동원해 느낀다. 땅과 자연을 몸으로 느끼며 그것을 말로 풀어낸다. 그들이 걷는 곳은 휴전선 부근 DMZ(비무장지대)다. 

 

▲ 워킹 홀리데이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다. 배우들이 객석 앞 뒤로 걸으며 진행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배우 김신록은 “자연소리, 풀소리, 벌레소리가 들리는데. 거기서 불규칙적으로 총탄 소리와 포사격 소리가 나요”라고 마음의 소리를 읊었다. 북한과 가깝고 맞닿은 지역이라 군부대가 많다. 수시로 전쟁 대비 훈련을 진행하기 때문에 총성이 울린다. 군인도 자주 보인다. 하지만 그곳은 한없이 평화로운 자연과 사람의 숨결이 살아있다. 

 

배우 장성익은 “나의 전쟁이 아니야. 그들의 전쟁이야. 내가 그들 전쟁에 동원돼야 하는 거야. 정말 싸운다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면서 그들의 전쟁을 강행하는 권력자와 싸워야지. 자기들 돈과 권력을 위해 전쟁하는 건데 내가 왜 동원돼야 하는지 모르겠어”라면서 전쟁과 분리된 수많은 ‘나’를 이야기했다.

 

▲ 연극 속에서는 한국 전쟁 말기 휴전협정이 다가오는 시기를 묘사한다. 사진=박효영 기자     

 

전쟁을 결정한 권력자와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은 철저히 나뉜다. 전쟁은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과 공간을 폐허로 만들고 끊임없이 타자화한다. 

 

워킹 홀리데이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따로 분리되지 않았다. 배우들은 객석 앞과 뒤를 걸어간다. 그러면서 뭔가 말한다. 그것을 카메라로 찍어 무대 앞 화면에 재생한다. 끊임없이 말하는 것의 내용은 나의 군생활과 너의 경험담이다. 살아가며 느꼈던 것과 DMZ를 걸으며 느꼈던 것이 섞여 의미있는 말로 풀어진다. 객석에 있는 관객도 ‘너이자 나’이다. 위대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주체라는 것이다. 

 

▲ 워킹 홀리데이를 연출한 이경성 감독. 사진=두산아트센터     

 

이 감독은 “우리의 (걷는) 경험이 우리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누군지 모를 관객 한 명 한 명을 다시 만나 그들 각자의 마음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더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염원이 작품 속에 담기길 바라면서 곧 극장에서 만나게 될 ‘너’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10년 넘게 동료들과 연극을 만들어 왔다. 그가 보인 관심의 초점은 사회의 병폐다. 이를 의식적으로 연극 작품으로 풀어내려고 애썼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근원적 문제는 결국 한반도의 분단 현실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북한 때문에’ 생겨나는 억압과 폭력의 정당화. 비단 징병제 군대에서 전역한 남성들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기 위해 온갖 폭력을 감내해야 하고 강자의 명령에 그저 순응해야 하는 현실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관행에 젖어서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한국 사회 전체에 그런 관행들이 전파된다. 

 

배우 나경민은 군대에서 선임의 폭력을 생생하게 재연한다. 성추행을 당하고 무기로 때려도 그냥 참는다. 그의 표정은 보기만 해도 안타까울 정도로 애처롭다. 하지만 선임은 폭력을 멈추지 않는다. 거대한 폭력이 정당화되고 그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피해자인 ‘너’도 ‘나’에게 가해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 방탄헬멧을 씌우고 죽도로 계속 때리는 군대 선임. 사진=박효영 기자     

 

이 감독은 다시 진정한 평화를 꿈꾸기 위해 “내 옆의 너, 그 너머의 너, 미디어 속의 너, 경계 너머의 너”까지 익명과 무명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타자들을 인격으로 인식해야 함을 강조했다. 예술가로서 그런 감각을 깨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이 워킹 홀리데이의 목적이다. 걸으면서 나를 말하고 너를 인식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