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노조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조(사내하청 노조)가 울산 1공장 점거농성에 돌입한 지 25일째인 9일 결국 공장 점거농성 파업을 풀었다.

   이번 점거농성파업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역시 이경훈 현대차 노조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정규직 노조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비정규직 노조 또한 점거농성 막바지에 안팎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지고 최대의 우군인 정규직 노조와 적잖은 갈등을 빚으면서 스스로 더 이상 고립된 투쟁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농성해제까지 25일간의 과정은 때론 긴박하고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노사는 일단 대화의 자리에 앉아 평화적인 사태해결에 나섰다.



◇ 대법의 파기환송 시점부터 비정규직 투쟁 불 붙어 = 지난 7월22일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취지로 고법에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과 최종 확정판결의 의미가 분명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노동계에서는 이미 최종 확정판결이 난 것처럼 현대차를 상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나서라고 연일 기자회견을 갖고, 투쟁 계획을 세우는 등 집중공세를 폈다.

   공세의 한가운데에는 금속노조와 직접적인 당사자인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조가 있었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곧바로 원청업체인 현대차를 상대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 카드를 제시했다.

   현대차가 '비정규직은 교섭대상이 아니다'며 협상을 계속 거부하자 비정규직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고 파업 찬반투표까지 실시해 76.3%(재적대비)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했다.

   하지만 중노위는 이 비정규직의 파업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는 현대차를 상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판정했다. 이후 대검찰청과 경찰도 모두 불법으로 규정했다.



 
◇ 시트사업부에서 시작한 울산 1공장 점거 = 비정규직은 투쟁의 수순을 계속 밟았다.

   지난달 12일 파업 찬반투표 이후 현대차 울산공장 내 시트사업부의 사내하청업체인 동성기업이 폐업하자 비정규직 조합원 30여명이 새로운 사내하청업체와 근로계약을 할 수 없고 정규직화를 시켜달라면서 비정규직 투쟁의 불씨를 지폈다.

   새 하청업체에서 고용을 승계하겠다고 했으나 근로계약서를 쓰면 결국 비정규직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새 계약을 거부하고 투쟁을 선택한 것이다.

현대차는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만큼 노조의 주장에는 전혀 법적인 설득력이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달 15일 울산공장 시트사업부에 30여명의 조합원이 무단으로 침입해 볼트와 너트를 던지면서 공정을 점거하려 했다. 사측 관리자들이 이를 막아섰고 이 과정에서 사측의 강모 차장은 크게 다쳐 현재 실명 위기에 처해 있다.

   시트사업부 사태가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비정규직 노조는 베르나와 클릭, 신형 엑센트를 생산하는 울산 1공장의 핵심공정인 도어 탈부착 공정을 점거했다.

   처음에는 500여명의 조합원이 점거를 시작하면서 이번 사태가 진행돼왔다.



 
◇ 현대차 안팎의 사태해결 노력 = 울산지검에서는 점거사태 사흘 후 비정규직 노조의 공장점거는 교섭 대상이 아닌 현대차에 교섭을 요구하며 벌이는 불법 파업이어서 엄정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검찰과 경찰은 점거기간 모두 16명의 주동자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사법기관에서는 불법에 대해서는 반드시 준엄한 법적 처벌을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현대차는 내부적으로 대표이사와 공장장이 점거공장 퇴거명령서를 전달하기도 했고 작업반장 600여명, 사내하청업체 대표 90여명, 현대차 협력업체 사장단 등이 잇따라 농성현장을 방문해 점거중단을 촉구했다.



   울산의 9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행복나누기울산협의회를 비롯해 각 시민단체는 점거농성을 풀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진보성향의 정당과 시민단체, 농성자 가족대책위 등은 하루빨리 정규직화하라며 집회와 기자회견을 잇따라 열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주말마다 비정규직 지원집회를 가졌고 지난달 20일에는 비정규직 황모 조합원이 분신을 시도해 사태 해결이 위기를 맞기도 했다.



 
◇ 정규직 노조가 중재자로 = 해결의 열쇠는 정규직 노조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 회사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늘었고 지난달 22일부터는 사측이 1공장에 대해 2시간 조업단축을 실시하자 정규직 조합원은 임금손실을 입고 고용불안에까지 놓이게 됐다.

사측은 휴업까지 심각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고, 경찰은 사태가 장기화하고 여론이 나빠지면 공권력 투입을 검토한다고 압박했다.

   파국을 막고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면 이경훈 현대차 정규직 노조위원장의 역할론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 위원장은 강호돈 대표이사와 만나 해결책을 논의하기도 했고, 거의 매일 점거농성장에 올라가 비정규직의 요구사항을 듣고 설득할 것은 설득하는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정규직 노조 관계자의 설명이다.

   회사 측이 농성장 내에 음식물과 물품의 반입을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가운데 정규직 노조가 나서서 이를 공급할 수 있도록 사측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비정규직과 금속노조까지 포함한 3자 노조대표회의를 수차례 주관하며 노사간 중재안을 만들어냈고 대화로 문제를 풀기 위해 농성을 해제하고 사측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해 비정규직 노조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9일 현대자동차 본관 앞에서 점거 파업을 벌였던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현대차 정규직 노조 간부들(앞)이 파업 정리 집회를 열고 있다

 
◇ 불법 점거농성 결국 왜 풀렸나 = 비정규직을 도와줄 수 있는 최대의 지원자는 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조합원이지만 그동안 정규직 내의 여론은 싸늘했다는 평가다.

   금속노조의 인터넷 게시판에도 비정규직의 점거농성에 대한 비난 글이 적지 않았다.

   정규직 노조는 중재 노력이 물거품이 되자 비정규직 지원투쟁에 나설지 정규직 조합원의 의사를 묻는 찬반투표에 나섰다.

   현대차 안팎에서는 투표에서 압도적인 부결이 나올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 불가피하고 비정규직 노조가 스스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비정규직 노조 점거 첫날 참여자가 570여명에 달했으나 마지막 농성 잔류자는 260여명인 것으로 안팎에서는 추산했다. 내분으로 일부 이탈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무조건 정규직화를 해야 한다는 강경 요구나 외부세력 주도의 투쟁 분위기는 비정규직 투쟁을 외길로 이끌어 결과적으로 고립시키는 역작용을 낳았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사측이 농성자 419명에 대해 총 162억원이라는 역대 최대규모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고 78명에 대해서는 형사고발ㆍ고소한 것도 비정규직 노조로서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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