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미인대회를 열어 그 나라의 제일가는 미인을 뽑는다. 한국에서도 벌써 오래전부터 미스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미인을 선발해 왔다. 진, 선, 미 세 미인으로 뽑힌 여성은 단박에 인생역전을 이뤘다.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것은 물론 국내에서도 인기를 한 몸에 모았다. 진(眞)으로 뽑히는 것이 최고의 미인으로 인정받는 일이지만 선(善)이나 미(美)로 선발된 여성이 오히려 진을 앞지르는 수도 생긴다. 그것은 국제적인 기준이 미인선발에서 국내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중국의 오대미인(五大美人)을 전통적으로 최고의 미인으로 쳐왔는데 그들과 얽힌 많은 사연은 임금의 방탕과 나라가 망하는 경우와 직통한다. 말하자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다. 미스 유니버스나 미스 월드에 비교해서 중국의 미녀들이 과연 그렇게 예뻤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중국식 과장법으로 미인들은 천정 높은 줄 모르고 올라만 갔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시적(詩的)이기도 한 별칭까지 붙여 불멸의 미인이 되었다. 하나씩 실례를 들어가며 살펴보자.

춘추시대 말기 월(越)나라에 서시(西施)라는 여인이 살았다. 어느 날 강변에 앉아 맑고 투명한 강물에 얼굴을 비췄다. 그 아름다움에 물속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넋을 잃었다. 수영을 하지 않으니 천천히 가라앉을 수밖에. 물고기가 가라앉았다고 해서 침어(沈魚)라는 칭호를 얻었다. 마침 월나라는 오나라에게 패하여 절치부심할 때다. 월나라 충신 범려는 서시를 데려다 예능을 가르쳐 오왕(吳王) 부차에게 바친다. 호색가인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잡혀 정치를 멀리하고 주지육림에 빠져 마침내 월나라에게 망하고 만다.

한(漢)나라 왕소군(王昭君)은 재주와 미모를 겸비한 여인으로 흉노를 달래기 위해 전략적으로 오랑캐 선우에게 시집가는 신세가 된다. 집을 떠나는 도중 멀리서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불현듯 고향생각에 눈물이 솟는다. 얼른 거문고를 들어 연주를 시작한다. 그 소리를 들은 한 무더기의 기러기들이 날개 짓을 멈추고 있다가 땅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왕소군에게 붙은 별칭이 낙안(落雁)이다. 중국에서도 인기가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특히 삼국지에 매료된다. 삼국지 초장을 보면 황건적들의 발호가 눈에 띤다. 이를 토벌하는 대장이 동탁이다. 동탁은 초선(貂嬋)에게 빠졌다가 여포(呂布)에게 목숨을 잃는다. 초선은 누구인가. 한나라 왕윤의 양녀다. 노래와 춤이 장기다. 어느 날 저녁 화원에서 휘영청 높이 뜬 달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살짝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렸다.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은 것이다. 이래서 붙여진 이름이 폐월(閉月)이다. 초선은 양아버지 양윤의 뜻에 따라 여포에게 접근하고 이에 질투를 못이긴 동탁이 오히려 여포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초선은 스스로 의로운 목숨을 끝낸다.

당나라 때 양귀비는 너무나 유명하다. 오죽하면 아편의 원료인 꽃 이름을 양귀비라고 했을까.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다. 당나라 명황의 황후가 되었으나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궁중생활에 염증을 느낀다. 하루는 화원에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는데 마침 곁에 피어있는 함수화(含羞花)를 건드렸다. 그러자 활짝 피어있는 꽃이 말아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임금이 양귀비의 미모에 꽃이 오히려 부끄러워했다고 해서 절대가인(絶對佳人)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수화(羞花)의 별칭이 명불허전이다.

조비연(趙飛燕)은 한나라 황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날씬한 여인이다. 요즘 아가씨들을 보면 날씬해지기 위한 무한노력을 기우린다. 살이 찌지 않으려고 굶기를 예사로 한다. 그러다가 영양실조로 생명을 잃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TV에 출연하는 것을 보면 하나같이 날씬한데 그 원조가 조비연인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그의 본명은 조의주인데 가볍기 그지없어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췄다고 해서 나는 제비라는 뜻의 비연이 되었다. 가무에 뛰어나 성황제의 선상연회(船上宴會)에서 춤을 추었다. 마침 불어온 강풍에 휘청 물에 빠질 뻔한 것을 황제가 발목을 붙잡았다. 춤 삼매경에 빠진 비연은 계속 춤을 췄다.

그래서 비연작장중무(飛燕作掌中舞)라는 고사가 생겼다. 비연은 이처럼 왕의 총애 속에 못하는 일이 없었으나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으로 황제가 죽자 탄핵되어 평민으로 강등하고 나중에는 걸식을 하다가 자살로 생을 끝마친다. 이들 다섯 미인의 얘기는 그저 지나가며 재미로 읽는다면 그만이다. 그러나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인의 일생은 그다지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권력자의 정략에 따라 험난한 곡예를 해야 하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맘에 없는 교태를 부리며 오랑캐라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은 정녕 권력의 화신일까 아니면 희생자일까. 미녀의 치맛자락에 놀아난 권력자들은 모두 나라를 망친다. 국민을 잘 살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해야 된다는 기본을 저버리고 주지육림에 파묻힌 권력자의 최후는 비참하다. 옛이야기로 현재를 뒤돌아보는 것은 후인의 지혜다. 권력과 골프의 최정상에서 망신을 산 클린턴과 우즈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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