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地球村에는 두 개의 매우 대조적인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사망을 애도하는 물결이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의 매체를 타고 전 세계에 연일 중개되면서 미국대중문화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 하나는 중국의 위구르/신장 자치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중국 한족 대 위구르족과의 유혈충돌사태로 위구르족 주장 500명이 한족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절규와 이를 과소평가하는 중국당국의 150명 사망설로 대비되는 모습으로 인류문명의 한계점이 극명하게 보여 지는 인간들의 모순점이 각종 언론에서 암묵적으로 비추어지고 있다.

세계의 경찰국가노릇을 자처하는 미국의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힘은, 하늘의 입장에선 다 같은 하나의 목숨이지만, 각종 언론이 한 연예인의 죽음을 어찌 보면 위구르지역의 평범한 수 백명의 사상자보다 더 비중 있게 다루면서 인간이 하늘아래 보편적으로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기본원리의 虛構性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고민이 어느 사회에서든지 건전한 좌파세력들의 공간을 제공하고 이들에게 사람의 가치에 대한 더 큰 고민을 하게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서 이렇게 우리가 자랑하는 인류 문명의 한계와 모순점은 항상 21세기 지구촌 문명의 언저리에도 도사리고 앉아서 인류의 평화를 威脅하고 앞으로 인류문명이 분명하게 진화해야 할 목표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衡平性을 잃은 정치권력과 富에 치중한 명예의 극단적인 모습이 이렇게 그려지는 것이다.

중국공산당(CCP)의 다민족통치체제를 지탱하는 중국공산당의 계속적인 통치의지와 대척점에서 자치와 인권에 눈을 떠가는 위구르인들의 자아의식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역사의 現場이기도 한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이든 한 소박인 위구르 농민의 죽음이든 다 같은 인간의 생명이고 같은 무게를 갖고 있는 하늘의 입장에서는 동등한 무게의 슬픔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마이클 잭슨의 영향력의 크기만큼 그의 죽음이 전 세계의 매스컴을 타고 葬送曲으로 울려 퍼지는 와중에서도 수 백의 위구르인들의 죽음은 지금도 굶어죽고 있는 아프리카의, 북한 땅의 한 가엾은 영혼처럼 상대적으로 더 적은 무게감으로 취급되는 취약한 문화의 평가구조에 가친 이 인류문명의 한계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가 외치는 보편적인 민주주의, 萬民동등한 가치 앞에서 평등한 세상이면서 모든 사람의 가치가 재산과 권력에 무관하게 같이 취급되는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이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인지 큰 숙제인 것이다.

항상 그렇게 수십억의 지구촌사람들은 같은 이 태양계(solar system)라는 우주 속에 한 생명을 갖고 있지만, 어디에서 태어나고, 무슨 교육을 받고, 얼마나 많은 부와 명예를 갖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도덕적인 규범과는 다르게 차별대우를 받고 죽음 후에도 죽음의 무게가 이렇게 다른 인류 문명의 限界를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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