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이참에 안전성 우려 씻겠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대지진과 지진해일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하냐’, ‘강진이나 해일에 대비해 안전성을 보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부는 이러한 점을 감안해 지난 3월 말부터 국내 모든 원전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12일 전력선 차단기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된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해서는 22일부터 매일 30~50여명의 점검단이 투입돼 정밀안전점검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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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 원자력발전소. 맨 앞쪽이 현재 정밀안전점검을 받고 있는 고리 1호기이다.

고리 1호기에 대한 정밀안전점검은 한국수력원자력(주) 측이 규제당국인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측에 자진 요청해 이뤄진 것이다. 고리 1호기를 비롯해 이미 모든 국내 원전에 안전점검을 실시한 상태였지만, 전력선 차단기 고장으로 가중된 지역주민 및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성규 KINS 원자력안전본부장은 “국내 모든 원전을 대상으로 실시된 안전점검은 설계기준 초과 지진 및 해일에 대한 안전성을 점검하고, 미흡하다면 무엇을 더 보강해야 하는가를 본 것이라면, 이번 고리 1호기의 정밀안전점검은 노후 원전으로서 ‘계속 운전’을 해도 위험하지 않겠느냐 하는 국민들의 걱정이 큰 것을 감안해 원자로 용기 건전성 및 경년열화(노후화) 관리 적합성 등에 대해 정밀하게 평가하기 위한 것”라고 설명했다.

4월28일 고리 원자력발전소를 찾았을 때는 정밀안전점검이 중간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한수원의 정밀안전점검 요청을 받고 바로 다음날인 22일부터 KINS 기술진과 산·학·연 민간전문가 30~50여명이 크게는 5개 분야에서 점검 중이었다. 점검은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로 보였지만, 언제 끝날 지는 기한을 정해놓지 않았다고 이 본부장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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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원전 1호기 주제어실에서 임재진 발전팀장이 정밀안전점검단에 안전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침 전기·계측 분야 정밀안전점검팀이 주제어실 점검에 나서는 것을 동행할 수 있었다. 주제어실은 고리 1호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중요 시설로, 발전소의 모든 계기들을 조작하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점검에 함께 나선 경희대 변승남 교수는 인간공학 전공이다. 과거 원전 사고가 설비·기기 등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 고장에 의한 것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기술발전으로 인해 이러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 원인은 줄어든 반면 상대적으로 사람에 의한 사고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밀점검을 위해 참가하게 된 것이다.

변 교수는 “고리 1호기 주제어실의 운전요원의 심리상태, 협력·하청업체에 대한 안전교육훈련, 타 발전소의 인적오류에 의한 사고 사례의 반영 여부 등을 점검하고 있다”며 “최근 5년간의 추세를 보면 원전 정지원인 중 25%가 사람이 조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될 만큼 인적오류 방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리 1호기 임재진 발전팀장은 “현재 주제어실은 원전 재가동을 위한 정비가 100% 완료된 상태”라고 전했다. 임 팀장은 “저희들 입장에서는 기술적으로 자신이 있지만, 인근 주민이나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마땅히 정밀점검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기술적으로 냉정하게 평가를 받아서 보완할 것이 있다면 보완을 하고 안전하게 가동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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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안전점검단이 전력선 차단실에서 전원 공급기를 점검하고 있다.

전력선 차단실. 이번 고리 1호기가 멈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곳이다. 조영식 KINS 전기제어실 연구원은 “발전에 필요한 각종 펌프에 전원을 공급하는 차단기 내부 연결단자를 고정하는 스프링의 장력 값을 너무 낮게 설정한 설계결함 문제가 있었다”며 “이미 그 부품은 다른 것으로 교체됐고 현재 차단실 쪽은 문제없이 작동하도록 정비가 돼 있는 상태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구조분야 정밀안전점검팀이 내진설계의 적합에 대해 점검 중이었다. 김문수 KINS 구조부지실 연구원은 “고리 1호기는 노후 발전소라서 ‘계속운전’이 결정나기 전에 기기들을 보강·교체한 것들이 꽤 있었다”며 “보강·교체된 기기들의 상태가 적절한지 확인하는 것이 제일 큰 점검분야이고, 안전정지를 유지하는 주요 기기들이 있는데 그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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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점검단이 고리 원전 시설관계자로부터 구조물에 대한 안전상태를 설명듣고 있다.
 
구조분야 정밀점검에 함께 참여한 김재민 전남대 해양토목공학과 교수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원전 선도국으로 가고 있는 입장에서 이번 점검을 선진국과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 100, 200년은 아니더라도 수십년은 더 사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비상전원을 공급해주는 비상디젤발전기실에 들어선 구조분야 점검팀은 발전기 및 유류 탱크 등 각종 시설들이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결합에 이상이 없는지 세세히 점검했다. 이를 지켜보던 발전소 관계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꼼꼼히 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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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본부장(왼쪽)이 원자력안전본부 실장들과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회의실에서는 이번 고리 1호기 정밀안전점검 뿐만 아니라 지난 3월 말부터 진행된 국내 원전 안전점검 내용을 토대로 이성규 본부장과 원자력안전본부 실장들이 보강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해일에 대비해 원전 주변을 둘러 방벽을 쌓는 방안, 비상디젤발전기 건물 등 주요시설에 방수문을 설치하는 방안 등 각 분야에서 내놓을 수 있는 모든 방안들을 1차적으로 조정하는 단계라고 이 본부장은 설명했다.

정밀안전점검이 끝나게 되면 이를 토대로 재가동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이성규 본부장은 “대체에너지가 부족한 우리나라로서는 ‘안전한 원자력만이 대안’”이라며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번 정밀안전점검을 통해 혹시 안전하지 않는 구석은 없는지 철저히 가려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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