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자에게서 실존을 배우다
노•장자에게서 실존을 배우다
  • 김정겸 교수
  • 승인 2018.02.1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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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겸 교수
김정겸 교수

[중앙뉴스=김정겸] 노자는 사회의 흔한 원인을 사물의 겉모습에 이끌려서 잘못된 인식과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는 사람들의 겉모습이나 배경으로 특정 사람에 대해 그릇된 인식과 편견을 갖는다. 이런 잘못된 판단을 중지해야 한다(Epoche).

자연이란 ‘自(스스로) 然(그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저절로 그러함’에 어긋나면 그 본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물의 본성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인위적인 행위를 가했을 때 물은 우리에게 반격을 가한다. 이처럼 아이들의 자연성을 해치게 되면 그 아이들도 우리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비행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노자의 이상적인 삶을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상선약수(上善若水)로 본다.

無爲自然이란 순수한 자연에 인위적인 가식과 위선의 행위를 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본래의 자기 모습대로 살아 갈 수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란 가장 으뜸이 되는 善은 물과 같다고 본다. 물은 무위 자연적 삶의 모범적 형태이다. 이런 자연을 지킬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 질수 있다.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 오리다리와 학의 다리는 그 길이가 서로 다른데 학의 다리 일부를 잘라서 오리다리에 붙인다고 오리와 학이 같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장자는 노자에 비해 탈속한 정신적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장자에게 있어 道란 위의 예에서 본 바처럼 이것과 저것의 절대 대립이 사라진 것을 도라고 본다. 따라서 道의 경지에서 보면 ‘너와 나’가 없다. 너와 내가 생각하는 순간부터 차별이 생기게 된다. ‘다름’은 인정해야 한다. 우리 모두 개성은 다르다. 그 개성의 조화로움을 통해 하나가 되어갈 수 있다. 그 사상을 “제물”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제물(齊物)은 Holistic (원효의 화쟁사상)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상세계의 분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세상의 한 면만을 바라보고 자기 것이 절대 보편타당하다고 주장하는 이기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만의 동굴에서 벗어나(Platon의 동굴의 비유)어느 것이 더 옳다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물은 Holistic 사유이다. 정신세계에 갖고 있는 나와 너의 대립[쟁(諍)]을 해소[화(和)]하는 것이 Holistic인 것이다. 장자에게 있어 제물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은  좌망(坐忘)과 심제(心制),물아일체(物我一體)를 통해서 이다.

좌망(坐忘)과 심제(心制)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잊으라는 것이다. 일체의 비교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상황을 마음속에서 깨끗이 비워 버려라. 그러면 마음의 동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비교하고 서로에게서 상처를 받는 동안 마음의 상태는 깨지게 된다.

물아일체(物我一體)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서 이야기 되는 것으로 좌망과 심제를 하면 하나가 될 수 있다. 物(상대방)과 我(나)의 하나됨 (一體)은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이해(Verstehen)'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해가 바탕이 될 때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정치에서 혼연일체, 즉 물아일체가 되지 않는 이유는 각자의 이해관계에서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끼리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이고 같은 당에서도 이전투구가 이루어 진다. 같이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물아 일체, 홀리스틱적 사유가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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