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위 질의방식 `극과극'



여야의 유력 대권 주자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첫대면하며 악수를 했다. 박 전 대표와 손 대표가 같은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야의 유력 대선 후보가 함께 만나게 된 것은, 손 대표가 6월 국회를 앞두고 박 전 대표가 활동하는 기획재정위를 소속 상임위로 선택함에 따라 이뤄졌다. 특히 기재위가 경제현안을 놓고 격돌하는 자리인 만큼 앞으로 두 대권 후보들의 ‘진검 승부’가 점쳐지고 있다.

두 대권 후보 중 회의장에 먼저 도착한 사람은 박 전 대표. 이날 오전 10시쯤 국회 기재위 회의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박 전 대표는 손 대표와 같은 상임위에서 활동하게 된 데 대해 “같은 상임위에 있으니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며 소감을 말했다.

민주당 의원총회가 끝나고 오전 10시20분쯤 기재위 회의에 출석한 손 대표도 박 전 대표에 “반갑습니다. 여기서 또 만나게 되네요”라며 인사를 했다. 두 유력 대권 후보는 취재진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악수했지만, 막상 상임위에서는 ‘극과 극’의 질의방식을 보이며 앞으로의 격돌을 예고했다.

이날 상임위에서 박 전 대표는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4대 보험 가입률 등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4대 보험 사각지대 해소의 시급성 등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 손 대표는 큰 틀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적하는 데 중점을 두는 모습이었다.
박 전 대표는 “(4대 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영세 사업주나 근로자의 사회보험료 부담을 소득에 따라 최고 절반까지 차등 경감해야 한다”는 정책대안을 제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신중하게 검토해서 개선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라는 답변을 얻어냈다.

반면 손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변화의 흐름을 외면하고 과거 경제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복지수요 충족을 위해 조세부담률을 국민이 공감하는 적정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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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참모들의 기억으로는 두 사람이 이렇게나마 만난 것은 최소한 4년은 됐다. 2007년 5월 손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후 몇몇 행사장에서 스치듯 마주친 것뿐이다. 가장 최근 스친 것은 작년 3월 서강대 개교 50주년 행사 때였다고 한다.

당시 박 전 대표가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손 대표도 참석했으나 따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1974년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고, 손 대표는 서울대 출신이지만 1990년부터 2년8개월여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내 준(準)동문 대우를 받는다.

두 사람은 당을 같이할 때도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박 전 대표가 1997년 12월 한나라당에 입당해 정치를 시작했을 때 손 대표는
복지부장관을 퇴임하고 막 당에 돌아와 있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박 전 대표가 2002년 2월 한나라당을 일시 탈당할 때까지 4년여간 함께 야당 생활을 했다.

하지만 손 대표는 진보성향의 중진급이었고 박 전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을 벗기 전이었다. 손 대표가 경기지사에 당선됐다가 다시 돌아온 것은 2006년 6월. 이때부터 손 대표가 당을 떠나기까지 1년간은 두 사람이 대선후보 경쟁 관계였다.

또 살아온 길과 정치노선이 달라 따로 만날 이유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 양측의 공통된 얘기다.

두 사람은 직접 상대에 대해 말하거나 평가한 일도 거의 없다. 박 전 대표측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손 대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손 대표측 관계자도 똑같은 말을 했다. 다만 다른 관계자는 "손 대표가 박 대표와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 전 대표측 관계자도 "손 대표가 2007년 탈당해 이명박 후보와의 3자 경선 구도가 무너짐으로써 박 전 대표가 패배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손 대표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손 대표는 서울대 재학시절 노동·빈민운동에 뛰어들어 장기간 수배생활을 했다. '위장취업 원조'라고 스스로 말한다. 1979년 10월 부산·마산민주화운동 현장에 갔다가 체포됐으나 박 대통령이 시해되면서 풀려났다. 박 전 대표는 이 시기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총탄에 잃었다. 손 대표는 이후 영국 유학을 갔다가 박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말해왔다.

두 사람의 이날 기획재정위 질의 주제는 모두 복지와 노동이었다. 그러나 내용과 스타일은 달랐다. 박 전 대표는 비정규직 및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4대보험 가입 문제에 대해 통계를 대면서 조목조목 따지는 스타일이었다. 손 대표는 교수(서강대) 출신답게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을 살피면서 정책기조의 변화를 촉구했다.

이런저런 개성의 차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두 사람의 관계를 '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박 대표는 4번의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산업자원위, 통일외교통상위, 국방위, 복지위를 거쳐 기획재정위로 왔다. 손 대표는 재무위, 통신과학기술위, 재정경제위 등을 거쳐 기획재정위를 택했다. 대선으로 가는 마지막 상임위로 기재위를 택한 두 사람은 앞으로 1년여간 치열한 내공(內功) 싸움을 이곳에서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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