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산에 오르려면 커다란 배낭에 온갖 것을 다 짊어져야만 되었다. 여름철에는 텐트와 버너, 석유통, 물통까지 짊어져야 했고, 쌀과 반찬이 없으면 굶어야 했다.
 
우비나 갈아입을 옷 등 여간 꼼꼼히 챙기지 않으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큰 낭패가 난다. 사전준비가 철저하지 않으면 지리산이나 한라산 등 큰 산에서 며칠씩 지내야 하는데 지장이 많다. 모든 것을 혼자서 준비하는 것은 아니기에 일행이 각자 준비물을 나눠 가져와야만 한다. 텐트도 요즘처럼 가벼운 재질의 물건이 아니고 대개 군에서 쓰는 A-텐트를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해서 쓸 때였다.

젊었을 때이니 20~30㎏ 정도의 무게는 보통 질만했다. 이것을 짊어지고 여름 산을 오르내리면 다리에 쥐가 나는 수가 많다. 쥐난 자리는 바늘로 콕 찔러 피가 나면 금방 풀린다고 해서 옷핀 같은 것을 준비하기도 하고, 뱀이 나오는 것을 예방한답시고 백반을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요즘 크고 좋은 산은 대부분 국립공원으로 변했고, 그렇지 못한 산들도 아름다운 경치를 뽐내며 도립공원이나 군립공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에서 음식을 끓여 먹을 수 있었던 시절 먹고 남은 음식찌꺼기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이 글을 읽는 올드팬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는 일이지만 대부분 적당히 땅을 파고 묻었다. 땅속에 묻는 것은 지저분한 음식물의 흔적을 없앨 뿐 아니라 나중에 썩게 되면 훌륭한 거름이 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땅에 묻는 사람은 등산인 중에서 상당히 예의바른 축에 속한다. 어떤 사람들은 땅 파는 것도 귀찮다고 바위틈이나 나무 사이에 던져버리는 수도 많았다. 김치나 된장을 끓여 먹은 찌꺼기를 냄비를 뒤집어 버리게 되면 그 일대는 고약한 냄새로 가득 찬다. 하루 이틀 지난 다음에는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 접근하기도 어렵다. 한창 자라고 있는 나무나 풀들이 음식물 찌꺼기를 뒤집어쓰면 며칠 못되어 시들시들 죽어간다.

그래도 그들은 큰소리쳤다. “산에 있는 동물에게 먹을 거리를 준 것이다“라고. 그런 측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산짐승, 날짐승에게는 오히려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 더럽혀진 것이 아니었을까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우리는 처절한 구제역 파동을 겪었다. 소와 돼지에게 전염된 구제역은 축산 농가의 절멸을 재촉했다. 몇 백㎏이 넘는 소만도 16만 마리가 매몰되었고 돼지는 300만 마리가 넘는다. 여기에 조류 인플루엔자까지 덮치면서 600만 수 이상이 매몰처분 되었다.

전국적으로 4천 군데가 넘는 곳에 엄청나게 큰 구덩이를 파고 이들을 묻었다. 이른바 살 처분이다. 축산 농가에는 실가 보상을 한다고 하지만 과연 생활의 수단이요 생계의 중심이었던 가축을 한꺼번에 매몰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충격이 되었을까.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민도 나왔다. 이런 판에 어떤 얼빠진 정치인 한 사람이 “땅속에서 썩은 동물은 좋은 거름이 된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치도곤을 맞기도 했다.

이를 잊을만할 때 터져 나온 게 고엽제 매몰사건이다. 이를 폭로한 사람은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미국인이다. 그는 50년 전 그가 근무했던 경북 왜관 캠프에서 고엽제 드럼통 수백 개를 땅에 묻은 사실을 털어놨다. 그의 증언은 아주 구체적이어서 목격하지 않은 사실을 허위로 폭로한 것이 아니라는 신뢰성을 주었고 뒤이어 나온 증인들은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자 부천 캠프에 있었던 사람이 여기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폭로하고 나왔고, 미군들이 주둔한 지역마다 대부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음이 증언으로 확보되었다.

주한미군 측에서는 증언과 문서 등에 의해서 그런 사실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그 뒤 이를 이전했다는 등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상황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한미 당국과 환경시민단체 등이 이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어 흐지부지 될 사건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환경을 생각할 시간을 다시 한 번 갖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환경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자연환경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과거로 한없이 되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에 맞춰 새로운 환경을 가꿔 나가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고장이 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과거의 등산객들이 더럽혔던 산의 환경이 이제는 깨끗해졌다. 음식조리를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등산객들의 문화와 환경의식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땅에 묻은 음식물 찌꺼기조차 오히려 해롭다고 인정하고 있는 실태다. 하물며 수백만의 동물을 생체로 매몰하고 극독(劇毒)의 화학물질을 지하에 매장한 것은 문화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만행이다. 물론 급격하게 퍼지는 구제역을 방지하고, 미군 부대 안에서 고엽제 드럼통을 너무 쉽게 처리한 것이 결국 오랜 세월이 흘러간 후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장마철을 앞두고 이들 문제점에 대한 만반의 대비책이 갖춰지지 않으면 제2, 제3의 공해가 닥칠 우려가 크다. 당국의 발 빠른 개선 조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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