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초대석] “꽃길을 걷는 것만이 아니야, 최선을 다해 버티는 것...”
[중앙초대석] “꽃길을 걷는 것만이 아니야, 최선을 다해 버티는 것...”
  • 신현지 기자
  • 승인 2019.05.04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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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화우공익재단' 박영립 이사장
'화우공익재단'의 박영립 이사장 (사진=신현지 기자)
'화우공익재단'의 박영립 이사장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기자] 지난 30일,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는 고故 강연희 전북 익산소방서 119구급대원(소방경)을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했다. 1차 심의에서의 위험직무순직 불인정 처리를 뒤집는 발표에 고故 강연희 유족은 결국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던 동료 소방관들도 “이제야 고인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며 유족 측 법률지원에 나선 재단법인 화우공익재단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또 “이번 결정에 우리 역시 현장에서 안심하고 직무 수행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라고 기뻐했다. 

이처럼 소방관들의 아픔과 사기진작을 위해 고무적인 성과를 낸 ‘화우공익재단’의 박영립 이사장을 본지가 만났다.

직접적인 사례 인정 폭을 넓혔다는 것에 의미...

“기쁘다. 더욱이 고인의 기일에 이 같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쁨이 크다. 1차 심의에서는 직접원인을 현장에서 사망한 경우로 좁게 해석했는데 2차 심의에서는 그것을 뒤집고 사망의 직접원인을 넓게 해석했다. 즉, 폭행 사건 이후 사망까지 29일 시차가 있었지만 다른 요인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과 고인이 폭언·폭행으로 질환이 악화해 사망했다는 점을 우리는 관철시켰고 이것이 인정이 되어 이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아무튼 이번 결정에 직접원인 사례 인정 폭을 넓혔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

2012년 공익위원회 발족에 이어 2015년 '화우공익재단'설립으로 소외계층을 위해 각별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화우공익재단'의 제2대 박영립 이사장, 소방관들의 감사함과 떨림을 대신한 기자의 물음에 그는 담담한 얼굴빛으로 기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해결한 사건들 모두가 숨 막히는 긴장을 요구했던 탓인지 기쁨마저도 그리 절제된 무표정이라 조심스러워졌다. 그렇다고 그의 무표정 뒤에 감추어진 열정을 발견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한센인들의 친구, 박영립 변호사

한센인들의 친구! 그러니까 화우공익재단의 수장이기 전에 한센인권 변호사로 먼저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기에 그에 깊은 속내를 짚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1945년 해방 전, 일본에 의해 소록도에 강제수용 된 590여명의 한센인들. 누가 그들의 삶을 돌아볼 생각이나 했던 것일까.

유전병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방치된 그들을 돌아본 건 박영립 변호사였다. 일본을 상대로 10년 넘게 싸워 온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그들의 한 맺힌 삶을 풀어내는 것에 성공했던 것이니. 또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는 국가를 상대로 낙태와 단종 등 인권침해를 입은 피해자 534명의 보상금을 받아내는데도 성공했다.

피해자 1인당 3천만원에서 1억4천이 되는 보상금이 그들 각자에게 돌아갔다. 이어 이번엔 위험직무순직으로 선례를 남기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처럼 늘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박영립 이사장을 마주하자 그의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특별한 건 없다. 굳이 내게서 특별함을 찾는다면, 스물에서야 검정고시로 중·고교 졸업장을 따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매번 이번이 마지막 학기라는 생각에 절박하게 공부를 했다는 것. 그리고 노동판, 여관 심부름꾼, 버스 계산원, 전선회사 임시직, 양복점 점원 등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봤다는 것.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소외계층에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 그들의 아픔이 내가 해결해야 할 부채처럼 느껴져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항상 사회적 약자에 먼저 다가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가 이렇게 자세를 낮추는 모습이라  더욱더 그의 걸어온 길이 궁금해졌다.

오나시스의 삶의 철학에 충격..."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따라해라"

“내 고향은 전남 담양, 그곳에서 장꾼들을 따라 상경한 건 열 네 살이었다. 당시 천원을 손에 쥐고 상경했는데 돌아갈 차비만 있었더라면 아마도 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지 않았을까 싶다. 초등학교 졸업장으로 서울생활을 버티어내기엔 너무도 힘들었던 것이니. 그렇다고 세상을 비관했거나 원망하지는 않았다.

당시는 모두가 그렇게 어려운 삶이라 그냥 그런 것이려니 했다. 다만, 초등학교 졸업으로 직업을 구할 수 없는 어려움에 늘 신분상승을 꿈꾸기는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에 대한 글을 읽게 되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부두노동자 출신인 그가 미국 대통령 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 여사를 매료시켰다는 점도 충격이었지만 부자들이 모인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 식사를 위해 노동자 주급을 다 털어냈다는 그의 생활철학이 내 심장을 뛰게 했다. 그러니 그의 책에서 발견한 “부자가 되고자 하면 부자를 따라서 해라”라는 구절이 나를 변화시키는데 충분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날 이후 난 ‘부자 따라하기’ 모델로 동대문 시장의 한 사장님을 정하고 유심히 그를 관찰하면서 경리학원을 나오면 직업구하기 쉽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중·고교 졸업장을 2년 만에 검정고시로 따냈다. 이어 대학까지 갈수 있었다.”

한권의 책을 통해 세계의 거부 오나시스의 삶의 철학을 꿰뚫고 변화를 거듭한 박영립 이사장. 그가 전공을 법학과로 택하게 된 것도 나름 깨달은 소명의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깨달은 소명의식... 법학과를 선택하고  

“대학을 장학금으로 첫발을 들여놓기는 했지만 그날그날 살아남기 위해 노동판을 전전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대학에서 빠질 수 없는 시간 중 하나가 채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신이 내게 어떠한 소명을 주고자 이런 험난한 길을 걷게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내 소명이 무엇일까? 내가 이 세상에 온 것도 이유가 있을 텐데? 순간 법학과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성찰을 통해 법학과를 선택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신의 섭리, 또 내가 살아온 모든 것에 부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소명의식에 흔들림 없는 한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박 이사장, 문득 거인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도 법으로도 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쳤을 때는 좌절을 경험 한단다. 그럴 때면 일본을 상대로 한센인들의 보상금을 받아냈을 때의 감동을 되새겨본다고. 그럼 그깟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이 내민 손길에 아픔이 치유되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 역시 울컥해지기도 한다고.

그러고 보니 박영립 이사장은 숨길 수 없는 촉촉한 감성을 털어놓기도 한다. 어릴 적 떠나온 고향의 모습이 여전히 아련하다고. 설핏 해지는 석양이면 향수에 문득 쓸쓸함이 느껴진다고.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 650여 명의 화우의 수장으로서 면모는 탄탄하고 매섭다. 화우의 활동과 계획을 그는 이렇게 소개한다.

'화우공익재단', 소외계층을 위해 목소리 아끼지 않을 터

“그동안 화우공익재단은 인권을 옹호하고 공익활동의 내실을 다지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홈리스, 이주민 등 소외된 이웃들에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고자 했고 홈리스들의 자립에 마중물 역할이 될 수 있도록 제1회 달팽이 음악제를 개최했다.

또한 고독사·공영장례, 서울시 여성시설, 해외입양인 법률지원 등으로 사회정의 실현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고, 청소년 대상 제1회 교실법 대회를 개최해 청소년 스스로 처한 문제를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화우는 이처럼 공익활동을 더욱 충실하게 수행할 것이며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주거권 보장, 고독사, 공영장례, 사후 자기결정권 등 사회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과감한 목소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화우공익재단 수장으로서 결연한 의지를 밝히는 그의 생활신조는 최선을 다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한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항상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 한다. 그래서 매일아침 기도하고 다짐하며 이웃에 이익이 되고 있는지 나를 성찰한다.”

중도포기하면 다시는 공부할 수 없을 것 같아 절박하게 공부했다는 박영립 변호사. 구로공단 10바퀴를 돌아도 직업을 구할 수 없었던 절대적 직업 빈곤의 시절을 살아왔다는 그에게 요즘 청년들에게 격려의 말을 청하자 빙긋이 미소 짓는다.

나를 성찰하고 열심히 살면서 버텨라

“글쎄다. 모두가 꽃길을 걷는 것만은 아니다. 주어진 길에서 열심히 살면서 버티다보면, 기쁨과 보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산다면 길은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전에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 중요한 것 같다.

자기만의 시간, 자기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어떤 동기부여가 일어나고 결과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내 생각이다.”

끝으로 가정에서의 그의 점수를 물으니 호탕한 웃음이다. 지금껏 자기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한 만큼 가족들에게 엄격해서 좋은 점수는 아닐 것이라고. 이제부터라도 조금은 부드러워지려고 노력할 거란다.부디 앞으로도 그가 사회적 약자의 대변인으로 변함없기를, 더불어 이 사회에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한편 ‘화우공익재단’은 국내외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등 650여 명의 전문 인력이 일하고 있는 대형 로펌으로 공정거래, 노동, 조세, 지식재산권 분야뿐만 아니라 25개 법률 분야에 대해 전문팀을 구성해 다양한 법률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특히 ‘화우공익재단’의 박영립 이사장은 정의로운 사회 구현에 기여한 점 등이 높게 평가되어 2018년 INAK사회공헌대상 ‘법률공로대상’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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