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우는 거지, 그것이 인생인 거지”

노인복지관에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어르신들 모습(사진=신현지 기자)
서울시립 노인복지관에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어르신들 모습(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급속한 고령화로 그 대책 마련이 시급한 한국, 정부의 노인복지서비스 수준은 어느 만큼에 와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본지는 노인복지 서비스 혜택이 우세한 도시 어르신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신도림역 2번 출구로 나와 계단을 오르자 눈에 띄게 어르신이 많이 보인다. 노인종합복지관으로 향하는 걸음들이다. 그러니 노인복지관을 찾아가는 길을 굳이 검색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다. 적색등이 꺼지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한 어르신 뒤를 따르니 역시나 눈앞에 4층 건물의 서울시립 구로노인종합복지관이다.

시간은 오후 4시를 향해 달리고, 복지관으로 들어가는 어르신보다 나오는 어르신이 더 많다. 벌써 하루를 마감하고 귀가 길인 듯하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복지관셔틀버스로 운행을 돕는 듯 수시로 차들이 들고 나는 모습도 보인다.

노인종합복지관 안으로 들어오니 안내데스크를 제외한 모두가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다. 심지어 복지관 회원등록을 돕는 자원봉사자도 80대의 어르신이고 청소원도 허리 굽은 어르신이다. 자원봉사자 어르신은 기자를 보자마자 고개를 흔들어 보인다. 

노인복지관의 바둑교실 (사진=신현지 기자)
노인복지관의 바둑교실 (사진=신현지 기자)

만 60세가 넘어야 회원 자격이 된단다. 물론 서울에 주소지를 두어야 하지만 지역은 상관없단다. 또 대리로 회원등록은 안된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내방을 해서 회원을 등록하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신청하면 된단다.

봉사자 어르신이 내민 프로그램 안내서를 살펴보니 놀랍도록 다양하다. 전산정보학과, 서예학과, 외국어교실, 사회교육실, 예술대학, 동아리반 등. 전산정보학도 컴퓨터기초반에서 중급반, 고급반으로 나뉘고, 외국어교실에도 영어, 일어, 중국어, 역사탐방 수지침, 하모니카, 신바람 건강체조, 댄스, 가요, 사물놀이, 웰빙요가, 산악등반 등 다양하다. 

한꺼번에 여러 강좌 신청이 가능해 여섯 강좌까지도 등록한 어르신이 있단다. 특히 컴퓨터 반은 인기가 좋아서 경쟁이 심하다 보니 예비생까지도 생겼고. 마침 오늘이 접수 마지막 날이니 빨리 서둘러야 한단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 정신없는 하루였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물리치료와 건강상담실이 운영되고 있으니 예약해서 이용하라는 설명까지도 곁들여 주신다. 마침 물리치료를 받고 나온 어르신도 보인다. 거동이 불편하다보니 복지사가 양쪽에서 팔을 붙들어 셔틀버스 안까지 배웅을 하는 모습이다.

물리치료실 맞은편으로는 체육시설도 보인다. 회원권이 있으면 언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단다. 슬쩍 들여다보니 많은 어르신들이 으샤으쌰 체력단련이다. 이곳을 지나 2층으로 오르니 먼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에 마치 도서관 같다. 그 아래로는 책을 읽는 어르신들이 독서삼매경이고.

(사진=신현지 기자)
휴게실에 비치된 컴퓨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사진=신현지 기자)

그 옆으로는 컴퓨터가 여러 대 놓여있고 오늘의 주식상황에 체크하는 어르신들과 문이 빠끔히 열린 방에는 바둑교실이 한창이다. 그리고 그 맞은편 방에는 하모니카를 배우는 어르신들이 악보를 익히는 듯 책상 위 오선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곳을 지나 3층을 오르니 컴퓨터교실의 문이 열려있고 배움에 빠진 어르신들이 방에 빼곡하다. 모두 진지한 표정이라 차마 가까이 들여다 볼 수는 없고 열린 문을 통해 들여다 보인다. 그 옆 서예교실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수강생이 많다는 것에 놀랍다. 하지만 아무것도 등록하지 않은 어르신도 있다.

휴게실 의자에 멍하게 앉아 있는 어르신. 그냥 사람 구경이 좋아 나오셨단다. 집에 혼자 있으면 답답해서 매일 이곳으로 나와 사람 구경을 하신단다. 뭘 배우는 건 잘 따라하지 못해 자신이 없단다. 또 귀찮기도 하고. 식사는 하셨냐니, 이곳에서 수급자에게는 점심을 무료로 주니 걱정 없단다.

수급자 아닌 사람은 3,500원이라면서. 머리도 무료로 깎을 수 있다고도 하신다. 하지만 수급자에게만 무료가 해당이 된단다. 물론 사람이 많으니 예약을 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고. 

(사진=신현지 기자)
컴퓨터 교육실  (사진=신현지 기자)

그러고는 어느 순간 꾸벅꾸벅 졸고 계신다.  어르신의 뒤편으로는 넓은 강당이다. 이곳 대강당에서는 예술대학프로그램이 펼쳐진단다. 댄스를 비롯해 건강체조, 한국무용, 시니어 로빅스, 라인댄스, 가요교실 등, 강당 입구에는 오늘까지 강좌신청 마지막이라 이를 돕는 자원봉사자가 앉아있다.

그런데 1층 데스크와는 달리 대학원생 자원봉사자다. 매일 2시간씩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한단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배울 점도 많다고 말한다. 나이든 어르신들이 배우고 즐기려는 의욕이 넘쳐 자신 역시 용기와 힘을 얻기도 한다면서.

또 알게 모르게 남녀 어르신들이 묘한 눈빛이 오가는 모습을 볼 때면 재미도 있단다. 노골적인 시샘으로 다툼을 하는 것도 봤단다. 물론 그것이 이상할 건 없지 않느냐는 표정이다. 노쇠한 육체와는 달리 살아있는 감성에 자신은 적극 환영이라면서.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이렇게 자원봉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컴퓨터 교육이 끝나고 어르신들이 귀가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그 중 한 어르신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아니 너무도 생기 있는 표정이다.  서금례 (77세)어르신, 고척동에서 나오셨다고 한다. 이곳 복지관 버스가 수시로  태우고 다녀 나오는 걸음이 어려울 것 하나 없다면서 스스럼없이 대화에 응해주신다.

“젊었을 적에는 먹고사는데 바빠 제대로 못 배운 게 한이었어, 그러니 뭐가 망설일게 있겠어. 이렇게 늙은이들 갈쳐주고 놀아주는 곳이 생겼는디,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둡고 말귀를 못 알아들어도 자꾸 하다봉게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디, 그런 재미로 나와서 배우는 것이여.

사람은 늙어 죽도록 배워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 이 말이여.  긍게 내 말은 세상 참 좋아졌다 이 말이여. 전에 여기 복지관을 몰랐을 때는 하루가 징그럽게 지루혔는디, 요즘은  눈떠서 갈 곳이 있다는 것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 

어르신은 복지관 버스가 출발하기 전 빨리 서둘러야한다면서도 하실 말씀은 다하고 걸음을 옮기신다. 그런 어르신의 표정이 젊은이 못지않은 기운이 느껴져 노인복지관을 나오는 걸음 역시 가벼워진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도심의 하루해가 저물고 저녁불빛이 유독 밝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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