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이나 단체를 막론하고 말썽이 없는 곳은 없다. 모두 개성이 강하고 자기 고집이 있기 때문에 갈등관계는 나오기 마련이다. 갈등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이것이 발전하면 곧 자칫 폭력을 유발하는 수가 생긴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쉽게 나타날 수 있는 게 폭력이다. 오죽하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선 말로 항의를 하거나 다툴 수 있다. 그러다 언쟁이 도를 넘게 되면 결국 주먹을 휘두르게 되는 불상사로 번진다.

가정이나 단체처럼 항상 얼굴을 맞대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허물이 없다. 말도 함부로 할 수 있다. 상대의 약점도 너무나 잘 안다. 자주 만나고 언제나 같은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에 서로 부딪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이 생기는 이유다.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는 게 대부분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약한 존재여서 당하는 수가 많지만 극히 드문 예로 여성의 폭력이 문제를 일으키는 수도 아주 없지는 않다. 단체의 경우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학교폭력이 으뜸이다.

학교폭력은 역사가 오래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생활영역은 크고 넓다. 시간적으로도 무려 12년에 걸친 장기적 동일 생활체가 된다. 매일처럼 얼굴을 맞대며 부비고 살아간다. 학교생활은 지덕체(智德體)를 연마하는 수련의 장이다. 우선 높은 지식수준을 갖추기 위해서 공부에 열중해야만 한다. 기초적인 앎의 수준을 유지하는 초등교육에서부터 전문적인 학문수련에 임하는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불철주야 노력을 거듭한다.

그러나 학문적 지식만으로 사회생활을 원만히 해낼 수는 없다. 반드시 인격을 갖춘 전 인격적 인물이 되는 것은 교육의 본질이다. 지식의 깊고 넓음보다도 심오한 인격의 소유자가 오히려 사회적으로 대우받는다. 인격이 없는 지식은 자칫 사회의 암 덩어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외국 대학에서 유학하고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인격을 갖춘 훌륭한 인물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의 지식은 하늘에 솟아 있을지 몰라도 행동 면에서 남을 존중하고 남에게 봉사하는 정신의 소유자만이 원만한 인격자 소리를 듣는다.

이를 중요시하지 않고 오직 공부 잘하는 것만을 제일의로 삼는 풍조가 풍미하는 것은 교육을 다루는 당국의 잘못에 기인한다. 오직 학습능력만을 위주로 한 교육으로 일관하다보면 학생들이 인격도야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진다. 게다가 사람마다 우열은 있게 마련이라 열등생으로 낙인찍힌 학생은 불만불평에 빠지게 된다. 그 불만을 표출할 길이 자칫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집단생활에서 열외로 빠진 학생들의 심리는 폭력적 방향으로 전환되어 다른 방면에서 성취감을 느끼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공황 속에서 새로이 교육계를 석권하고 있는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에 의한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변화는 학교폭력을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고 있다. 학생인권을 존중하다가 교사의 인권은 축소되는 모순도 속출한다. 학생을 훈계하다가 거꾸로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교사가 있는가 하면 감정적으로 학생에게 매질을 한 교사도 있다. 힘없는 여교사를 중학생이 폭행하는가 하면 초등학생도 천인공노할 교사폭행을 한 사례도 없지 않다.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빈발하는 학교폭력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학교폭력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에 기인하지만 대체적으로 사회가 불안하거나 교육당국의 원칙이 무너지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지금처럼 진보 교육감들이 교육의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표만 의식하여 무상급식이나 주창하는 식으로 전개되면 결국 교육의 가치관이 전도되어 본말이 뒤집어진다. 그런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식자들은 이를 걱정하고 있지만 원칙을 다잡아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식으로 ‘표플리즘’에 빠져있다.

제대로 지도적 입장을 견지해야 할 정치지도자들이 잘못된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 공짜 의식만 주입하고 있으니 학생들의 머리도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머릿속에서 어떻게 사도(師道)를 지킬 수 있겠으며 친구들과의 원만한 화해가 이뤄질 수 있겠는가. 교육지도자나 정치지도자들도 모두 제 몫만 생각하면서 학생들에게만 정도를 가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반성하고 참회하는 인성을 가지지 못하면 부딪치고 충돌하는 것을 두려워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학교라는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고 있다. 교육의 본질보다 겻가지에만 신경 쓰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왕따나 폭력 등 학생들의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반교육 행태를 올바르게 추스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점점 심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표만 의식하는 사람들에게는 본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맹과니가 되어 버린 교육을 내세워 출세한 명색 지도자라는 이들이 먼저 깨달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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