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현, 문화콘텐츠로 세상을 읽다]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조정현, 문화콘텐츠로 세상을 읽다]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 윤장섭
  • 승인 2020.04.17 18: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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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현 칼럼니스트(군장대학교 교수)
조정현 칼럼니스트

21세기 정치·문화·사회·경제의 세계화 속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K-콘텐츠로 문화를, ‘촛불’로 정치를, 심지어 현재의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카오스의 한 가운데에서 희망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나라가 사회·경제를 통해 이상(理想)적 징후를 재현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 말하고자 한다면 너무 성급한 것일까. 그렇다면 끝말만 바꾸어, 세계화의 밀물에 맞선 지난 시대를 온전히 넘어서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썰물을 내보내는 ‘원더랜드’를 꿈꾸는 ‘앨리스’가 되고자 하는 것은 어떨까.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는 빅토리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현대 예술로 끊임없이 변주되는 영문학의 고전이자 현대 문화의 아이콘이다.

‘앨리스’가 모험하는 세계인 ‘원더랜드’는 무릇 지금여기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거울인 것 같다. 욕망의 절제와 엄격한 통제가 미덕이던 시대에 감히 내보인 욕망이 던져주는 ‘여기는 어디인가’의 문제...앨리스의 몸이 커지고 작아지는 과정에서 감히 내보인 ‘나는 누구인가’의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면 저기,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고정되지 않는 정체성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역설의 긍정이라는 화두를 던지기 때문이다.

첫째, ‘원더랜드’는 일정하지 않고 급작스럽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변화를 반복한다. 이는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는 배경이 되고 또 다른 사건을 향해 나가는 길을 열어준다. 이질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는 공간들은 언제라도 접속이 가능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리솜rhizome’의 원리를 지니기 때문이다.

전세계에 K-콘텐츠의 저력을 떨친 세계돌 BTS나 영화 ‘기생충’ 등의 콘텐츠는 동·서양과의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문화양식의산물이다. 이들이 초국가적 형태의 가사와 안무와 팬덤 그리고 공간의 간극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인들에게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자화상을 공감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개별적으로 축적되어 가는 문화적 가치들이 다양성이라는 끊임없는 새로움으로 공존하는 리솜이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원더랜드’는 현실의 공간과 단절되면서 현실이라 믿었던 그곳이 또다른 세계로 전복되는 곳이다. 앨리스가 토끼 굴에서 우물같이 깊은 곳으로 떨어지면서 맞닥들이는 예측불가능의 공간마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돌아다니고 뒤져보고 빈둥거려도 오히려, ‘원더랜드’는 ‘앨리스’의 행동에 변형되고 참여하는 현실과 가상의 ‘이상한’ 세계가 된다.

‘혼자 다니지 말라’는 관습적이고 억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기존 질서의 공간이 앨리스의 상상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에 의해 전복되는 것이다. 더 이상 어른들이 말하는 어린아이가 되기를 거부하는 어린아이 ‘앨리스’의 행동이 세계를 변화시킨 것이다.

어느 광고에서처럼 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변형되는 무의식의 세계는 현실에서 실현되었었다. ‘촛불’로서 스스로가 만든 세계를 우리 스스로가 다시 한 번 변화시킨 이 전복적인 행동은 무조건 어른을 믿어야만 하는 어린이의 순진무구함을 강요하는 현실을 대체하는 앨리스의 상상같은 것이었고. 앞으로도 이 이상한(?) 나라는 그 상상에 따라 또다른 세계로 계속 바꾸어 갈 것이다.

셋째, ‘원더랜드’는 시간이 멈춰 버리고 사건은 발생되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곳이다. ‘미치광이’들의 다과회 시간은 항상 6시에 고정되어 있다. 산업사회의 시간관에서 벗어나 시간이 주는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거부한다.

여기서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인식되고 같은 의미로 다가 오지도 않는다. 개개인의 생각에 따라 주어진 공간과 삶의 모습들에 따라 질적으로 다르게 작용하는 주체도 객체도 없는 상대적인 시간이다.

‘코로나 펜데믹’에 대해 세계 속에서 인정받고 있는 방역과 일상 그리고 선거에 대처하는 대한민국의 시간도 그렇다.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카오스의 시간을 가둬버리고 방역의 그 어떤 주체나 객체가 특별히 없는 아니 모두가 방역의 주체요, 객체의 모습으로 새로운 일상을 상상하고 이전의 현실을 새롭게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공포의 시간을 거부하고 ‘앨리스’의 무의식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꿈꿨던 상상을 지금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어 가는 공간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행동하면 세계가 움직였던 것처럼...

(문화콘텐츠연구소-뉴NEW 대표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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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2020-04-17 18:49:13
아주 유익한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