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위대한 예측불허』펴낸 이효림 시인

사진 제공 / 이효림 시인
사진 제공 / 이효림 시인

 

거리의 따뜻한 노래가 내게는 들리지 않았네

이효림

 

귀를 팔에 걸고 나왔네

내가 걸고 다닌 얼굴들엔

막 시작하는 푸른 오늘이 들어 있었네

샴푸향은 다정하거나 두근거렸네

웹 지도는 운명선을 보여주는

겨울 취미

추운 장갑은 햇살과 손을 잡았네

 

얼음이 물꽃이면 참 좋겠네

가장 오래된 얼굴로 파란 불을 기다렸네

두 개의 신발은

나란히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백 년 전 사람

 

정보는 정보끼리

가 보지 못한 나라를 떠돌고

빽빽한 세계에 끼어들지 못한 나라

노래가 되지 못한 겨울 사물들

 

지금 가만히 서 있는

저 여자를 이해해야겠네

내게 와서 죽은 너를 몰래 버려야겠네

 

파랑 없는 길은 또 어려웠네

 

                                               - 이효림 시집 『위대한 예측불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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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그런 날, 그런 때가 있다. 믿었던 이들 다 떠나고 황량한 벌판에 혼자 서있는 그런 소외감,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하던가. 상실(혹은 소외나 배신)의 경험은 인간에게 내면으로만 꽁꽁 잠가버리는 후유증을 남기기도 하며 차갑게 정지된 사물처럼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다시 일어설 기력마저 앗아가 현실 세계를 겉돌게 하던 아픈 상흔이 내게도 있다. 파란 신호등 하나 찾지 못해 비탄과 자학으로 멀어버렸던 두 눈의 기억을 소환해본다. 어떤 노래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던 이방인 같던 그런 나를 정작 이해해야했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한참을 방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시인의 심상을 다독거리듯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화자가 ‘파랑 없는 길은 또 어려웠네’ 라고 고백하는 것은 이미 극복해낸 길이었으므로... 그 어떤 상실의 아픔마저도 詩로 버무려낼 수 있다는 것은 시인의 힘이다.

피카소풍의 자신만의 독특한 詩세계를 구축해가는 이효림 시인의 길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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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림 시인 /

경남 밀양 출생

2007년 《시와반시》 등단

시집 『명랑한 소풍』 『위대한 예측불허』

2018년 아르코장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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