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나비가 되어』 펴낸 임영희 시인

사진제공 / 임영희 시인
사진제공 / 임영희 시인

 

맨드라미의 사랑 법

 임영희

 

   내가 당신을 만나 활활 타 올랐을 때, 걷잡을 수 없이 타 올랐을 때 연기도 없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빠져나갈 출구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애당초 출구가 없는 세상은 소통의 부재를 낳습니다 소통의 부재는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는 법이라서 멈춤 신호등 앞에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연기를 뱉어내지 못해 연소되지 못한 심장이 선지보다 붉은 저주의 탈을 쓰고 한낮 빈 길목을 쓸쓸히 지키고 있습니다

                                            - 임영희 시집 『나비가 되어』 에서

 

  사랑에 중독되어 본 사람이라면, 아니 사랑을 거절당하거나 배신의 쓴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죽음보다 강렬한 광기의 맛? 통점의 그 뜨거움! 석고화 되어버린지 오랜 해묵은 상처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맛이다. ‘선지보다 붉은 저주의 탈을 쓰고’있는 용감한 사랑 중독자의 아우라, 폭염 속에서 불타던 선지빛 맨드라미꽃! 도도한 사랑법을 읽는다. 폭염의 여름날, 장닭의 그 벼슬처럼 붉은 맨드라미는 고개 숙일 줄 모른다. 사랑에 빠진 자의 모습이 뜨거운 맨드라미로 환생했음이다. 내 사랑이 너무 진해서 그대에게 다 닿지 못할 때의 안타까움마저 안으로 붉게 침잠하는 그 뜨거운 맨드라미 사랑이라니. 아니 빈 골목을 기다리는 망부석 같은 사랑이라니. 서툴다. 우직하다. 심장을 때린다. 그 사랑법!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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