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씨가 중병에 걸려 중환자실을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한 번도 병문안을 가지 못했습니다. 민초가 무슨 전직 대통령의 병문안이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재임 중 두 번이나 나를 청와대 점심에 초대하여 두 번 다 단 둘이 앉아 점심을 함께 하고 시국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 개인에 대하여 천절하고 정성스러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 그 회고록을 사서 읽어보지는 않았으니까 자신 있는 의견을 피력하기는 어렵지만, 신문이 소개하는 내용을 훑어 보면서, 이 사람의 병이 육신의 병이 아니라 정신의 병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그의 인물평이 어느 한 가지도 타당하다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회고록을 스스로 써내려갈 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김영삼을 두고, “모든 게 권력 투쟁…그를 오판했다.” 그걸 이제 와서 말이라고 합니까. 그를 오판해서 정권이 엉뚱한 사람에게 넘어갔다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배를 갈라야지요. 김대중을 두고 “대단한 인물”인데 “점차 총명이 흐려졌다”는 평가는 호남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말로 밖에는 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전두환과의 “강한 우정”이 그 때 있었다고 믿을 사람은 대한민국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정을 국가보다 상위에 놓을 수 없었다”는 그 말은 정말 가증스럽게 여겨졌습니다. 대통령을 지낸 대장부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노태우가 토해낸 인물평 가운데 나의 분통을 터뜨린 한 마디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육사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들었다고 털어놓은 사관생도 노태우의 망언입니다. “1954년 9월 이 대통령이 육사를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옆의 국방장관에게 ‘여기가 어디지?’라고 묻는 등 정신이 맑지 못한 상태였다. 어린 마음에도 아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54년에 이 대통령은 아직 70대였습니다. 회고록을 집필한 노태우의 나이도 아마 그 쯤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나이가 되어서도 노태우는 정신이 말짱한데 이승만은 이미 망령이 들었다는 것입니까. 말조심하세요. 리비아의 카다피는 노태우보다 10년이나 젊었지만 자신의 권력을 내 놓지 않으려고 양민을 수없이 학살하고 있으며, 시리아의 아사드 또한 권력 유지 때문에 만행에 만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3.15 부정선거와 4.19를 맞은 대통령 이승만은 85세였지만 그 모든 책임을 지고 “국민이 원한다면”하는 한 마디를 남기고 당당하게 경무대를 떠나던 그 모습을 기억 못합니까.

‘활 나간다, 총 나간다’식의 엉뚱한 발언이 하도 많아 혹시 몰매 맞아 노년에 더욱 고생하게 될까 저허합니다. 돈 주고 사서 읽을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그 책의 제목을 ‘회고록’이 아닌 ‘망언록’으로 바꾸기를 당부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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