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신현지 기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입증됐다. 한국의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즐겨봤을 단순한 한국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장악했다.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9월 17일 공개 이후 보름도 되지 않아 세계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오징어 게임’에 K-콘텐츠의 위상도 덩달아 뛰어올랐다. 10월 6일 기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 순위 집계에 따르면 190여개 국 서비스되는 ‘오징어 게임’이 83개 국가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까지 통틀어 전 세계 TV 영상 1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달고나세트, 가면, 의상 등 굿즈상품도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러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왜일까. 어떤 요인이 ‘오징어 게임’을 단시간에 세계무대의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한 것일까.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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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은 거액의 채무 등에 쫓겨 사회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구슬치기, 오징어 게임 등 어린 시절 동네 골목에서 즐겼던 친숙한 놀이가 서바이벌 게임에 소환됐다. 다만,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은 동심의 순수한 게임이 아닌 죽음의 게임으로 변모했다. 쉽게 말하자면 ‘오징어 게임’은 동심 파괴의 잔혹 동화로 국내에 익숙지 않은 서바이벌 데스 게임 장르다.

데스게임 구조는 정해진 규칙을 플레이어(주인공 등)가 따라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제재(죽음)를 받게 된다. 규칙은 복잡하고 어려우며, 플레이어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채 게임을 강요하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또 데스 게임의 대부분은 비상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 게임을 해결해나가는 것에 보편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황 감독의 ‘오징어게임’의 규칙은 지극히 단순하다. 게다가 처음부터 참가자들이 게임을 거부하거나 처음부터 포기할 수 있다는 규칙에서 시작된다. 더욱이 비상한 능력을 갖춘 영웅서사와는 거리가 먼 사회 밑바닥 잘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성기훈(이정재)마저 실직 후 경마에 빠져 거액의 빚을 지고 사채업자로부터 신체포기각서까지 강요받는 인물이다. 게다가 이혼한 전처를 찾아가 돈을 빌릴 정도로 막장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형편없는 남자다.

여기에 조직의 돈을 도박장에서 날려먹고 부하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조폭(장덕수), 살아남기 위해 게 장덕수에 자신의 몸을 성적 도구로 이용하는 한 미녀(김주령), 파키스탄 출신의 이주노동자로 밀린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쫓기는 ‘알리 압둘’ 동생과 살기 위해 소매치기 생활로 거칠게 살아온 새터민 등 참가자 모두가 인생 막장 인물이며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러니까 세계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오징어게임’의 열풍의 원인을 찾는다면 기존 데스 게임 구조와는 차별화를 둔 플롯 구성이라고 본다. 여기에 경쟁사회 승자독식의 민낯을 디테일하게 녹여냈다는 점이다.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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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오징어게임’은 경쟁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담아낸 축소판이었다는 점이 열풍의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참가자들이 게임을 거부하거나 처음부터 포기할 수 있다는 규칙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설정은 시작부터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높이는데 적중했으니,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오는 빈부격차의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고자 한 연출자의 전략이 글로벌 관객에게 통했다는 얘기다.

특히 사건에만 치중하지 않은 인물들의 내면 갈등과 인간적 교감은 국내 관객의 신파라는 비난과 달리 해외 관객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오징어 게임’에서 그동안 한국영화를 지배했던 권선징악, 해피엔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학(드라마)은 시대를 반영하는 것.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권선징악 구조의 문학이 몰락한 지는 이미 오래다.

이에 황 감독의 ‘오징어 게임’은 요행이 용납되지 않는 자본주의 현대 사회에 대한 사실적 묘사에만 열중한다. 따라서 드라마는 456억원의 상금을 타내기 위해 먼저 상대를 제압해야만 하는 살육의 현장에 동물적인 욕망만이 극대화된다. 최고령 참가자이며 호스트인 오일남(오영수)의 가진 자의 방자함과 돈이 권력이 된 세태풍자도 억지스럽지 않다. 돈이 많아 사는 게 시들해진 오일남이 노년의 재미거리로 인간사냥 게임을 만들었다는 설정이 다소 충격이긴 하지만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는 거액의 돈뭉치에 불나방처럼 모여든 참가자들과 섞여 살육의 현장을 즐기는 모습으로 현대 사회의 부도덕성을 풍자한다.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인간 사냥 게임에 베팅을 걸던 VIP룸의 그들도 원형경기장의 검투사 살육전을 즐기던 로마의 네로 황제보다 더한 기득권자들의 타락과 추악함을 고발하는데 디테일하다. 돈이 절대 권력이 된 현대사회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그들에게 남은 건 동물적인 욕구뿐, 상대적 약자들은 경주장의 경주마에 다를 바 없다. 그저 정욕과 향락에 필요한 놀이도구일 뿐. 이 같은 현대 사회 최상위 포식자 행태에 관객은 저마다의 불편한 코드에 눈을 감으면서도 정주행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징어게임’이 벌어지는 살육의 공간은 죽음의 게임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파스텔 톤의 동화적 세트로 관객을 사로잡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배우들도 몽환적인 세트장에 “판타지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고 그 공간 안에 있는 느낌이 황홀했다”고  전하고 있다.

채경선 미술감독은 “유년기 시절의 향수와 동심이 담긴 공간을 펼쳐 주고 싶었다”며“ 잔혹하고 잔인한 스토리가 그와 상충하는 이미지 때문에 더욱 극대화해 보인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오징어 게임'이 긍정적인 평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논란 역시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표절시비에 이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육체를 도구로 활용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여성혐오 비판, 시체 훼손, 동성애, 잔인하고 폭력적인 묘사 등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생존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들에게 ‘오징어 게임’이 주는 시사점을 외면할 수는 없으리라 본다. “나는 말이 아니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어떻게 사람한테 이런 짓들을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용서가 안 돼”라며 분노하던 기훈의 마지막 대사를 많은 관객이 곱씹어봤으리라 생각한다.

무한 경쟁에 내몰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과 권력자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오징어 게임’ 2탄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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