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로 1963년 "제1회 청룡영화상", "제3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 수상

[중앙뉴스=윤장섭 기자]1950~60년대의 톱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최지희(본명 김경자) 원로 영화배우가 향년 81의 나이로 별세했다.

1950~60년대의 톱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최지희(본명 김경자) 원로 영화배우가 향년 81의 나이로 별세했다.(사진=영화배우 한지일님 제공)
1950~60년대의 톱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최지희(본명 김경자) 원로 영화배우가 향년 81의 나이로 별세했다.(사진=영화배우 한지일님 제공)

한지일 영화배우는 본지에 영화 '아름다운 악녀', '말띠 여대생', '김약국의 딸들'등 수많은 작품을 남기신 "한국 영화인 원로회 명예회장이신 최지희 선배님께서 17일 낮 12시께 서울 은평성모병원에서 투병 중 소천하셨다"고 알려왔다.

고인은 유족으로는 "딸 윤현수씨 한분만 있으며 2년동안 홀로 어머니(故 최지희)를 간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고인의 빈소는 서울 중구 을지로 백병원에 마련됐다.

윤현수씨는 어머니가 “루푸스병으로 고생하다 폐렴 증세로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그동안 요양병원과 딸 윤씨 집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인은 "1940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인 1946년 가족들과 함께 귀국해 경남 하동에서 성장했다. 경남여중을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배우 일을 시작했다." 고인은 당시 신세를 진 영화 제작자 최남용씨의 성을 따서 예명을 최지희로 지었다.

고인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58년 부터다. 고인은 1958년 영화 '아름다운 악녀'에서 소매치기 소녀 은미로 출연해 스타가 됐다. 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후 고인은
1963년 유현목 감독의 '김약국의 딸들'에서 주인공 용란 역으로 "제1회 청룡영화상"과 "제3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고의 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고인은 1966년 결혼해 딸 윤현수씨를 낳은 뒤 1969년 이혼했다. 이후 1년뒤인 1970년 영화계에 다시 컴백해 '남대문 출신 용팔이', '팔도 가시나이, 등 액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고인은 1971년 영화 ‘케이라스의 황금’에서 의상감독을 맡았고, 1972년도에는 패션 디자이너로도 활동했다. 영화계를 떠난 뒤에는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1974년 미국의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철학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이후 귀국해 코미디언 자니 윤과 함께 1988년 ‘서울 프레올림픽쇼’를 기획·제작하기도 했다.

고인은 또 1989년 영화 ‘잡초들의 봄’ 조연으로 영화배우로 복귀했다. 1997년 드라마 ‘인간의 땅’에 출연한 뒤로는 배우로서 더 이상 활동하지 않았으나 영화 '오빠가 돌아왔다'(2010 제작·2014 개봉)와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노라노'(2013)는 고인의 마지막 출연작이 됐다.

고인은 한국영화인원로회 회장을 지냈으며, 2011년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공로상을 받았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을지로 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고인의 따님과 한국영화인 원로회 이해룡 회장, 총무이사인 문재철 님이 조문객들을 맞아 장례절차를 치르고 있다. 발인은 19일 오전 9시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을지로 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영화배우 한지일님 제공)
고인의 빈소는 서울 을지로 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영화배우 한지일님 제공)

장지는 분당스카이케슬이다. 故장진영님과 故원로배우 최성님, 故이택균님 등 여러분의 영화배우님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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