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 체감경기는 ‘뚝’…“기업 심리 위축돼”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으로 건설업계가 ‘살얼음판’이다. 이로 인해 작년 말 두 달 연속 개선됐던 건설업 체감지수가 새해 들어 뚝 떨어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 1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가 지난해 12월(92.5)보다 17.9포인트(p) 하락한 74.6을 기록했다고 3일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으로 건설업계가 불투명하고 ‘살얼음판’이 됐다. (사진=김상미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으로 건설업계가 불투명하고 ‘살얼음판’이 됐다. (사진=김상미 기자)

CBSI가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 현재의 건설경기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것을, 100을 넘으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CBSI는 작년 11월과 12월 각각 4.5p, 4.1p 상승해 2개월 연속 지수가 개선됐지만, 올해 1월 17.9p 급락하며 1년 5개월 만에 최저치로 내려왔다.

통상 1월에는 연말보다 공사 물량이 감소해 지수가 전월 대비 5∼10p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올해는 20p 가까이 하락해 평소보다 10p가량 더 떨어졌다.

박철한 연구위원은 “연초 공사 물량이 감소하는 계절적 영향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기업 심리 위축 때문에 지수 감소폭이 예년보다 컸다”며 “유가 상승으로 비용이 상승하고,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 명을 넘어서는 등 불확실성이 확대된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달 CBSI는 이달보다 22.0p 상승한 96.6으로 전망됐다. 이달 낙폭이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실제 회복 여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연구원은 분석했다.

중대재해법으로 이처럼 국내 건설업계가 얼어붙었는데 해외의 경우도 중대재해법에 관련 처벌수위는 마찬가지로 강력하다. 

경영책임자 처벌할 수 있고 형량도 하한형인 ‘징역 1년 이상’이다. 선진국에서도 사용자를 처벌할 수 있게 돼 있고 벌금에 상한선도 없다.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산업·시민 재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지난 27일 시행에 들어갔으나 찬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기업과 경영자에 대한 과도한 처벌의 공포 때문에 경영 위축이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선 해외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처벌 수위가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노동계는 오히려 처벌 수위가 낮고 처벌 범위도 좁아 법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며 보완 입법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중대재해법의 처벌 강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처벌 수위가 높은 편이다.

많은 나라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기업이나 경영자에게 안전관리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 시 처벌하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운영하고 있다. 산안법과 별개로 중대재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법을 제정한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영국, 캐나다, 호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안법이 기업의 안전관리 의무를 정하고 감독하는 행정법이라면, 중대재해법은 산업재해 발생 시 처벌하는 형사법이다.

유사법을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는 캐나다로 1992년 웨스트레이 광산 사고가 계기가 됐다. 메탄가스 폭발사고로 2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음에도 회사와 관리책임자를 기소하지 못한 데 대한 사회적 반성으로 2003년 '단체의 형사책임법'을 제정했다.

호주는 2003년 수도 캔버라가 있는 준주에서 같은 취지의 ‘산업살인법’을 제정했고, 영국에선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 2007년 제정됐는데 ‘세월호 사건’과 흡사한 1987년 엔터프라이즈 여객선 침몰사고 등이 배경이 됐다.

우리나라는 해외 선진국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데도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비판 속에 21대 국회에서 정의당 발의로 지난해 1월 중대재해법을 제정했다. 명칭을 비롯한 외형은 영국법을 모델로 삼았으나 내용은 호주·캐나다법을 주로 참고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중대재해법 6조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1명 이상 사망자가 생긴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한 산안법에 비하면 처벌이 강화된 것이다.

법정 형량을 주로 살인 등 중범죄에 대한 처벌 방식인 ‘하한형’으로 규정한 점도 과도한 처벌로 지적받는 근거다. 예를 들어 형법상 살인죄는 5년 이상 징역(하한형)이지만 과실치사죄는 2년 이하 금고(상한형)다.

건설업체들이 출연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최수영 연구위원은 2021년 발표한 '해외사례 비교를 통한 중대재해 처벌법 향후 정책방향'이란 보고서에서 “중대재해는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해 발생한다”며 “징역의 하한형은 형법에서도 고의범에게 적용되며 1년 이상 징역에 해당하는 처벌은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에게 적용되는 매우 높은 강도의 처벌”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작성한 ‘중대재해기업 처벌 관련 해외 사례와 산재예방 효과’ 자료 등을 살펴봐도 중대재해와 관련한 경영자 처벌 규정을 징역의 하한형으로 한 해외 사례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경영자 처벌 규정이 우리나라 중대재해법에만 존재하는 건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호주 준주 산업살인법에는 사용자와 고위직 관리자에게 20년 이하 금고와 32만 호주달러(한화 2억7천만원) 이하 벌금을 병과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캐나다 ‘단체의 형사책임법’은 기업에 대해 벌금형만 규정하고 있다. 다만 캐나다는 이 법과 별개로 형법을 적용해 부상재해는 10년 이하 징역, 사망재해는 무기징역까지 개인에게 선고할 수 있다.

영국 기업살인법도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는 처벌만 있다. 하지만 영국 기업살인법은 기업에 대한 벌금액을 50억원 이하로 제한한 한국과 달리 벌금액에 상한이 없고 연매출액과 연동해 산정하기 때문에 처벌 수위를 낮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캐나다도 기업에 대한 벌금액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12월 ‘산업안전 관련 사업주 처벌 국제 비교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가 주요국 중 산업안전 관련 처벌 수위가 가장 높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호주 등 11개국의 산업안전 관련 법률을 우리나라 산안법과 비교한 결과, 안전·보건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를 사망하게 한 사업주에 대한 법정형 평균이 징역 3년 이하, 벌금 1천만원 내외로 한국(징역 7년 이하·벌금 1억원 이하)보다 낮다는 것이다.

한편,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한국 경제규모는 G10(주요 10개국)으로 거론되지만 산업안전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꼴찌에 가까울 만큼 산업재해 사망자가 많다”며 “산안법 법정형이 높다고 처벌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사망시 징역 7년 이하여도 실제론 실형이 거의 없고 사망자 1명당 평균 벌금액은 430만원 정도다. 경영책임자에 대한 실제 처벌을 강화해야 구조적 원인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중대재해법이 별도로 제정된 것”이라고 했다.

건설 노동자 10만명당 사고 사망자 수는 2017년 기준 OECD 평균 8.29명이지만 우리나라는 세 배 이상인 25.45명으로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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