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이사장
박근종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기고=박근종 이사장]러시아·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 고조 여파가 우리 경제와 산업계에 전방위적 타격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양국 간 전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경우 에너지·원자재 수급, 수출 등 산업 활동 전반에 악재가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면전의 방아쇠가 될 수 있는 ‘돈바스 내전’의 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다. 친러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 8년째 내전이 이어져 온 대표적인 무력 분쟁 지역인 돈바스 지역에서는 가스관이 폭발하는 등 최근 며칠째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돈바스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접경지도 전운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CNN은 지난 2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정보당국자의 말을 빌려 러시아군이 주력 전투부대 전력인 대대전술단 160개 중 75%인 120개를 우크라이나 국경 60㎞ 이내에 배치했다고 전했고, AFP도 위성 데이터를 인용해 러시아군 기갑부대가 국경일대로 전진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국제사회는 전쟁을 막기 위해 다양한 중재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과 유럽은 돈바스 지역의 포성을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은 2월 20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통해 돈바스 휴전 방안을 논의했다. 프랑스 엘리제궁은 “두 정상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유용한 조처를 하기로 합의했다.”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현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보이면서 “긴장 고조는 우크라이나군의 도발 탓”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이 2월 22일(현지시간) 러시아의 행보에 대해 "러시아 침공의 시작"이라고 규정하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돈바스의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결성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독립을 승인하고 이 지역에 파병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세계는 지금 미국과 중·러가 대립하는 신냉전 구도로 가고 있다. 지구촌에서의 전쟁을 막기 위한 중재 노력은 반드시 결실을 맺고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문제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수출 중심 경제구조인 우리나라에 연쇄 타격을 미칠 수 있기에 이번 사태가 결단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다.

최근 우리 경제는 미국발 인플레이션 공포로 경고등이 켜진 데다 석 달 연속 무역수지 적자와 외환보유액 감소의 먹구름까지 더해지고 있고,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원자재 가격 상승과 유가 급등에 따른 고물가, 고환율, 국가 부채 급증, 오미크론(Omikron)의 창궐 등으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다. 

설상가상 북한은 올해 들어 일곱 차례 미사일 발사 도발을 한 데 이어 추가 도발 움직임을 보이는 등 안보 상황 역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을 만큼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경제의 기둥 격인 제조업에도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에프앤가이드(FnGuide)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중 68%가량의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에 미달했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짙게 드리운 전운에 유연하게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왜냐면, 러시아는 천연가스의 25%를 생산하는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이미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중단 압박으로 국제유가를 끌어올렸고, 전 세계 원유의 12%를 생산하는데, 절반 이상을 유럽에 수출한다. 두 나라는 주요한 곡물 수출국이기도 하다.

세계 5위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정세 불안은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을 불러왔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과 유럽은 당연히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할 것이고, 이는 원자재 공급 차질을 초래해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CNN 등에 따르면 2월 22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한 연설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큰 부분을 잘라내는 것을 발표한 것”이라면서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이 요구된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한 달간 국제유가는 6%가량 급등해 WTI 값이 배럴당 90달러 선에 올라섰다. 만일 러시아산 원유 공급 중단 상황이 빚어진다면 15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미국·유럽 등 서방이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할 경우에 글로벌 기업의 제품 판매나 원자재·부품 공급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와 교역이 틀어막히면 코로나19로 불거진 글로벌 공급망 병목과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도 급속히 확산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관세청이 지난 2월 21일 발표한 ‘2022년 2월 1일 ∼ 2월 20일 수출입 현황’을 보면 수출은 34,304백만 달러인데 수입은 35,984백만 달러로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1,679백만 달러였다. 이렇게 2월 들어 20일까지 무역적자가 이어지면서 세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지난해 12월에 20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선 뒤 지금까지 마이너스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2월의 남은 기간(21~28일) 동안 흑자 전환에 실패할 경우에는 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가 확정된다. 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는 2008년 6~9월 넉 달 연속 적자를 낸 이후 약 13년 만이다. 이러한 이유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는 영향에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한 여파다

이대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상반기 내내 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공산이 매우 크고, 물가는 물론 소비에 직격탄이 되며, 자본 유출도 우려된다. 그야말로 우크라이나발 국제경제 충격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경제 비상 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원자재·에너지·곡물 수급 동향 등을 면밀하고 촘촘히 점검하면서 시나리오별로 정교한 세부 대책을 세워 국내 기업·가계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원자재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비축유 방출 등 비축물자 관리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주요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자원 의존도 분산정책 등 자원외교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지혜로운 외교안보 전략에 의거한 교민 안전과 긴급 철수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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