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초남이성지 진정성 회복 위한 확장조사”

[중앙뉴스= 신현지 기자]한국 최초 천주교 순교자 유골 발견지인 완주 바우배기(초남이성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본격 시작된다. 지난해 9월 전주교구는 완주 바우배기(초남이성지)에서 천주교 첫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의 유골과 유품을 230여 년 만에 확인했다.

완주 바우배기(초남이성지) 순교자 유골 출토현황(사진=전주교구)
완주 바우배기(초남이성지) 순교자 유골 출토현황(사진=전주교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완주 바우배기(초남이성지) 한국 최초 천주교 순교자 유골 발견지 현장에서 발굴 착수보고회를 개최하고 초남이성지의 진정성 회복을 위한 학술발굴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에 이번 발굴조사는 초남이성지에 대한 중장기 학술조사의 하나로 2021년 확인된 한국 최초 순교자 윤지충 등의 유골 발견지역에 대한 추가 확장조사다. 조사는 바우배기 일원에 대한 추가 매장자 확인과 순교자들의 최초 매장지 추적을 위한 토양 표본 확보가 목적이다.

바우배기(초남이성지)는 지난해 9월 한국 최초 순교자인 윤지충의 유골과 유품이 확인되어 주목을 받았다. 발견된 유골은 천주교 전주교구가 해부학적 감식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피장자의 외상 소견, 나이, 성별 등을 추정한 결과 윤지충, 윤지헌, 권상연 순교자임을 확인했다.

발견된 유골과 유품은 조선 후기 혼란한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서학으로 주목받던 천주교가 전파되는 과정에 발생한 박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발견된 해당 유품에는 순교자들의 인적사항이 표기돼 있었다.

윤지충은 1784년 먼저 천주교에 입교한 김범우의 집에서 <천주실의>와 <칠극>을 접하고, 고종사촌인 정약용 형제의 가르침으로 천주교에 입교했으며, 어머니가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천주교 예법으로 장례를 치렀다. 1791(정조 15년)에 윤지충과 권상연 등은 제사를 거부하고 부모의 신주를 불태운 사건으로 체포되어 전주 남문 밖(전동성당 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순교자 묘소 수습 유물 (사진=전주교구)
순교자 묘소 수습 유물 (사진=전주교구)

또 1801년(순조 1년)에는 찬주교인 이승훈, 권철신, 정약종, 중국인 신부 주문모 등이 사형에 처해지고 정약전, 정약용이 귀양형을 받는 등 천주교도 약 100명이 박해로 처형되고 400명이 유배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그동안 초남이성지에 순교자가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바우배기 일대를 포함해 순교자 유항검 생가터 등 신해박해, 신유박해와 관련한 해당 지역을 조사·정비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이번 조사는 이러한 의견들을 반영하여 처음 시행되는 학술발굴로서,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초남이성지를 포함한 전북지역의 주요 종교유적에 대한 현황조사도 시행할 예정이다. 또한, 바우배기 순교자 매장지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순교자 유항검(柳恒儉·1756~1801)의 생가에 대한 중장기 발굴조사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유항검 생가는 현재 기록에 남아있는 파가저택(破家瀦宅) 사례 중에 위치를 알 수 있는 드문 사례로  조선 후기 지방 반가 저택 건축의 실상을 파악함과 동시에 당시의 정치사회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초남이성지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조선 후기 역사 연구와 관련된 중장기 학술조사연구에도 집중할 것이다” 며, “보존관리, 활용에 대한 유기적인 협업을 위해 천주교 전주교구, 완주군과 꾸준히 협력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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