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연 4세에 아역 배우로 시작…한국배우 최초 국제 3대 영화제 수상

[중앙뉴스= 박기연 기자 ]영화배우 강수연 씨가 7일 55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 5일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 강씨는 이날 오후 5시 48분께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통증을 호소하다 가족의 신고로 출동한 소방에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사흘째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고인이 된 배우 강수연은 4살 때 아역배우로 시작해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원조 월드스타'다.

강수연이 생전 출연한 영화는 공식적으로 1975년 '핏줄'부터 최근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인 넷플릭스 영화 '정이'까지 40여 편으로, 한국 영화사가 투영돼 있다.

강수연은 4세에 집 앞에서 길거리 캐스팅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아역배우가 많지 않아서 강수연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고,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1986)로 손창민과 함께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가 됐다.

강수연의 대표작인 작품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1987)에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노출신으로 화제가 됐는데, 이때 나이가 불과 21세였다.

강수연은 생전 인터뷰에서 '씨받이'의 출산 장면만 4박 5일 동안 촬영했다고 밝혔다. 이 영화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 배우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임권택 감독과는 2년 뒤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춰 모스크바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누렸다. 비구니 역을 맡은 강수연은 영화 속 삭발 장면에서 실제 머리를 깎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긴 머리가 여성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기에 여배우의 삭발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강수연은 "비구니 역이어서 머리를 깎는 것은 당연했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수연은 1980년대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감자'(1987)로 고난을 겪는 한국 여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페미니즘 계열로 분류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에서 여성상의 변화를 표출했다.

이어 강수연은 깊은 감수성과 지독하고 깊은 사랑을 보여준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지독한 사랑'(1996), '깊은 슬픔(1997)' 등을 통해 출연이 곧 흥행으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활동이 뜸했지만, 올해 공개 예정인 연상호 감독의 SF 영화 '정이'에 출연하면서 오래 기다려온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상황이었다. 이 작품에서 강수연은 뇌 복제를 책임지는 연구소 팀장 서현 역을 맡았다. 모든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인 이 영화는 고인의 유작이 됐다.

그녀는 '고래사냥2'(1985)에서 원효대교에서 한강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고, 35%대 시청률을 기록한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는 한겨울 촬영 때 얇은 소복만 입은 채 얼음물에 들어가기도 했다.영화계나 방송가에서 강수연은 작품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강수연은 어린 나이에 커리어 정점을 찍은 톱스타였지만 영화계에서는 무명 배우나 스태프 등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맏언니'로 통했다.

그녀는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사태로 영화제가 위기에 직면한 이후인 2015∼2017년에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생전의 그녀는 작품을 할 때마다 연기자로서 부족함을 느낀다고 고백하던 강수연은 인터뷰에서 꿈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연기 잘하는 할머니 여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을 비롯해 강수연과 인연을 맺었던 영화인들은 이날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강수연의 장례를 영화인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장례위원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17호에 빈소를 차리고 8일 오전 10시부터 조문을 받기로 했다. 영결식은 11일 치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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