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 대기자 ]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겁나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도 무섭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와 중국의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차질에 따른 원자재 및 곡물 가격이 폭등한데다가 고유가의 지속에 원화의 약세까지 더해지면서 비용 부담 가중으로 물가의 고공행진이 그칠 줄 모르고 지속되는 탓이다.

피부로 느끼는 것만이 아니다. 실제로 각종 통계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지난 6월 10일(현지 시각) 미국 노동부가 밝힌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동기 대비 8.6% 올랐다. 1981년 12월 이후 4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영국도 지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동기 대비 9.1% 올라 1982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유럽연합(EU)도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8.1%로 EU 결성 이후 사상 최고치로 나타난 가운데 경제난이 심각한 파키스탄의 6월 물가는 전년 동기보다 무려 21.3%나 올라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급등세를 이어갔다.

우리나라도 통계청이 지난 6월 3일 발표한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5.4% 오르면서 2008년 9월의 5.1% 이후 13년 8개월 만에 5%대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상승 폭으로 따지면 2008년 8월의 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최대치다. 문제는 오는 7월 5일 발표할 예정인 6월 물가 상승률은 5월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 6%를 웃도는 상승률을 기정사실화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분위기다. 만약 6%대까지 물가가 오르면 이는 1998년 11월의 6.8%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와 재계의 레토릭(Rhetoric │ 修辭學)은 전에 없이 강하여 심각한 경제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비롯한 태풍의 권역에 우리 마당이 들어가 있어.”(6월 3일, 윤석열 대통령), “지금 국민들 숨넘어가는 상황.”(6월 20일, 윤석열 대통령),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이 밀려올 수 있다.”(6월 23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복합적 위기가 예상보다 크고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다.”(6월 23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7~8월에 6%대의 물가 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6월 26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현재의 사업모델을 탈출하는 방식의 과감한 경영 활동에 나서야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6월 17일, 최태원 SK그룹 회장), “숫자(투자액)는 모르겠고 그냥 목숨 걸고 하는 겁니다.”(5월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라는 등 전시(戰時) 상황을 방불케 하는 강력한 메시지들을 쏟아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총력 대응’이라며,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유류세 인하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거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와 함께 현장과는 온도 차가 크게 느껴진다. 물가를 잡겠다면서 출범과 동시에 전례 없는 ‘60조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새 정부의 의지도 과연 충분했는지 묻고 싶다. 민심이 지금과 같은 물가 상승을 과연 언제까지 인내하고 지켜볼지도 두고 볼 일이다.

정부는 유가로 인한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규모 세수 감소를 감수한 채 유류세를 지난해 11월부터는 20%, 올 5월부터는 30%를 내려 적용하고 있다. 올 7월부터는 인하 폭을 37%로 확대했다. 더 낮추려면 법을 고쳐야 한다.

사실상 법정 최대 폭의 유류세 인하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류세 인하는 적용하기 매우 손쉬운 카드지만 유가가 오르면 소비자가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워진다. 대부분 주유소가 유류세 인하분을 다 반영하지 않은 가격으로 휘발유나 경유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유류세 인하 혜택을 주유소가 가로채고 있다는 의혹이 짙어진다.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눈감아선 결단코 안 될 일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합동점검반을 구성해 현장 점검에 나서기로 했는데, 담합 등 불법행위가 없는지 서둘러 철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유류세 인하를 둘러싸고 그동안 소비자 불만은 주유소가 신속하게 세금 인하분을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유류세는 정유사에서 석유제품을 출고할 때 부과한다. 따라서 주유소는 재고를 소진하고 인하된 유류세가 붙은 새 제품을 들여올 때부터 가격을 낮출 수 있다. 문제는 인하 적용 시점의 차이 탓에 논란이 이어졌다. 유류세를 법정 최대한도인 37%로 인하한 첫날인 7월 1일 두 달 만에 주유소 기름값이 내려갔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129원으로 전날보다 16원 내렸고, 경유 가격은 2,158원으로 10원 가까이 하락했다.

그런데 소비자단체인 이(E)컨슈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발표에 따르면 7월 1일 전국 주유소 가격을 분석한 결과 67% 정도는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올랐다고 한다. 치솟는 기름값 탓에 국민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정유사들은 역대 최대 이익을 거두며 ‘홀로 초호황’을 이어가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E)컨슈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에서 실시한 유류세를 20% 내린 지난해 11월과 최근의 주유소 석유제품 가격 변동 조사에서도 30%로 확대한 유류세 인하분을 가격에 충실히 반영한 주유소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름값 상승에도 소비자들은 소비를 잘 줄이지 않고 습관적으로 다니던 주유소만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속성을 악용하여 주유소들이 유류세 인하분을 가격에 다 반영하지 않고 비싸게 팔려고 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이를 위해 주유소들이 서로 담합을 했다면 소비자를 등치는 시장 교란 행위로 마땅히 제재를 받아야만 한다.

정유 4사가 지난 4분기에 2조 원, 그리고 올해 1분기에 역대 최고인 4조2,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기름값 상승세로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 정유사들의 초과 이윤을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이른바 ‘횡재세(Windfall Profit Tax)'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기업이 돈을 벌었다고 징벌적인 세금으로 거둬들이면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거시적 흐름 앞에서 미시적 대책은 분명 한계가 있는 법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로 기름값을 내린 점을 감안한다면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영국은 지난달 석유와 가스업체에 25%의 초과 이윤세를 부과하기로 했고, 미국도 도입을 추진하는 중인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국회에서도 유류세를 더 낮추는 법안을 발의했거나, 추가적인 인하 의견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내 들 때부터 “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될 수 있다.”란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 계층이 운송연료비로 지출한 돈은 월 5만2,606원인데 반하여, 상위 20% 계층은 18만1,035원이었다는 보도도 있다. 이는 유류세 인하는 운송연료비를 많이 쓰는 고소득층에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가고, 가격 상승에 따른 석유 소비 억제 유인을 오히려 가로막거나 약화를 초래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다 주유소들이 유류세 인하 혜택의 일부를 이익으로 가로채기까지 한다면 정부가 세수를 줄여가며 추진하는 부담에 비해 정책 효과가 지나치게 떨어지게 된다. 유류세 37% 인하로 한 달 세수는 7천억 원가량 감소한다. 인하 폭 추가 확대를 논의하기에 앞서 면밀하게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한편,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의 지난 5월 4일(현지 시각) ‘빅 스텝(Big step │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의 금리 인상(연 0.25~0.5% → 연 0.75~1%)에 이어 6월 15일(현지 시각)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의 금리 인상(연 0.75~1.00% → 연 1.50~1.75%)이라는 고강도 긴축 돌입으로 현재 1.75%인 한국의 기준금리는 미국 정책금리 상단 1.75%와 같아졌고 다음 달에는 금리 역전 현상마저 우려된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원화 가치를 떠받치기 위해 오는 7월 14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에서 역대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Big step)’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시장에 퍼져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6월 28일 보도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 금리는 오름세를 지속하면서 8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가계대출 금리 상승세는 2021년 6월 이후 12개월 연속 이어졌다. 기준금리 인상에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등 지표금리가 상승한 영향을 받았다.

금리 인상에 따른 문제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출금리(수입이자/대출금)는 빨리 올리고 예금금리(지급이자/예수금)는 천천히 올린다. 그래서 ‘예대마진(대출과 예금 금리 차이에 따른 이익)’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고 그런 것부터 점검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30일 발표한 ‘2022년 5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우선, 5월 중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저축성수신금리는 연 2.02%로 전월 대비 15bp(0.15%포인트) 상승했다. 순수저축성예금과 시장형금융상품의 금리가 각각 14bp(0.14%포인트), 20bp(0.20%포인트) 상승해 연 1.95%, 연 2.30%를 기록했다.

또한, 지난달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전체 대출금리는 연 3.68%로 전월 대비 11bp(0.11%포인트) 상승했다. 이중 가계 대출금리는 9bp(0.09%포인트) 오른 4.14%를 기록했다. 2014년 1월 수준인 4.15% 이후 8년 4개월 만에 최고치다. 지난달 은행권 일반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연 5.78%로 한 달 전 5.62%보다 0.16%포인트 뛰었다. 은행권 신용대출 상품의 지표금리 격인 은행채(AAA·무보증) 1년물의 금리가 지난달 2.48%로, 한 달 전 2.37%보다 0.11%포인트 상승한 영향이다. 고정금리 대출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은 금리는 지난 4월 3.38%에서 지난달 3.49%로 0.11%포인트 올랐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활용되는 코픽스(COFIX │ 자금조달비용지수)는 같은 기간 1.84%에서 1.98%로 높아졌다. 가계대출 금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9%로 전월 수준을 유지했다.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저축성 수신금리는 연 2.02%로 한 달 전보다 0.15% 포인트 상승했고, 대출 금리는 연 3.68%로 전월 대비 0.11% 포인트 상승했다. 따라서 대출 금리와 저축성 수신금리 차이인 ‘예대마진’은 1.66%포인트로 전월 대비 0.04%포인트 하락했다. 그러나 여전히 ‘예대마진’폭은 크다. 문제는 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집을 사느라 빚을 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 구매)’과 ‘빚투(빚내서 투자)’들의 급격한 이자 부담은 물론 자영업자들의 줄도산이 우려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24일 발표한 ‘2022년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859조4,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웃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0.5%포인트만 올려도 가계대출 이자 부담은 6조7,000억 원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또한 금리 1%포인트 상승할 때 가계 이자 부담은 1인당 66만 원, 전체적으로 33조 원 상승한다. 그런데 이런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5대 금융그룹은 1분기 11조3,000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이익을 남겼다. 이런 초호황은 2018년 6월 이후 최대폭을 기록한 것으로 예대금리 차로 인해 이익 창출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데 문제가 나온다. 따라서 금융기관들이 이런 현장 분석을 통해 ‘예대마진’에 대한 쏠림 현상이 없도록 막아야 한다. 유류세 인하로 주유소만 혜택을 보거나, 금리 인상으로 은행만 혜택을 독식하는 것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금융 당국은 취약계층이 빚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에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모든 역량을 다하여야 하고, 경제 당국은 관세를 포함한 탄력적 물가 조절 방안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작금의 금리 인상은 금융 취약 차주에게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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