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꺾이지 않은 물가...통화전쟁의 불 지펴

박근종 이사장
박근종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 이사장]인플레이션(Inflation │ 물가상승) 대응을 위한 각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이 통화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지난 7월 13일(현지 시각)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9.1%, 한 달 전인 5월보다 1.3%나 올라 통화전쟁의 불을 지폈다. 이는 1981년 12월 이후 최대폭이었던 지난달 8.6%를 뛰어넘은 수준으로 40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어 하루 만인 7월 14일(현지 시각)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미국의 ‘6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 동월보다 11.3%, 한 달 전인 5월보다 1.1%나 올라 통화전쟁의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일반적으로 생산자물가는 향후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따라서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중대 지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9.1%까지 치솟은 CPI와 11.3%의 가파른 상승을 이어가는 PPI로 인해 소비자물가도 당분간 고공 행진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연준(Fed)이 이달 기준금리를 한 번에 1%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물가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연준(Fed)이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보다 더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기준금리 예측 프로그램인 ‘페드워치(Fed Watch)’는 지난 7월 14일(현지 시각) 이달 말 연준(Fed)이 ‘울트라 스텝(Ultra step │ 기준금리 1%포인트 인상)’을 밟을 확률을 82.1%,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선택할 확률을 17.9%로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도 연준(Fed)이 오는 7월 26∼2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상인 ‘울트라 스텝(Ultra step)’을 할 것이란 기대감을 키웠다. 일본 투자은행 노무라(野村)도 “연준(Fed)은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 대응할 것”이라며 1%포인트 인상을 예상했고, 앤드루 홀렌호스트 씨티그룹 미국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도 "7월 회의에서 1%포인트 인상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연준(Fed)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1%포인트 이상 올린 건 미국이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 물가상승이 통제를 벗어난 상태)’과 씨름하던 1980년대가 마지막이다.

점화된 통화전쟁은 이미 격화되었다. 즉각 캐나다가 반응했다. 지난 7월 13일(현지 시각)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1%로 발표된 지 몇 시간 후 캐나다 중앙은행인 캐나다은행(BOC)은 곧바로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2.5%로 1%포인트나 올렸다. 올해 G7(주요 7국) 선진국 가운데 첫 번째 ‘울트라 스텝(Ultra step │ 기준금리 1%포인트 인상)’이었다. 미국 연준(Fed)이 지난 5월 ‘빅 스텝(Big step │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6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놀라게 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울트라 스텝(Ultra step)’이라는 초강수가 등장한 것이다. 캐나다가 글로벌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점보스텝을 밟은 것은 미국으로의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포석이다.

연준(Fed)에 이어 둘째로 영향력이 큰 유럽중앙은행(ECB)도 오는 20~21일 통화정책회의에서 11년 만의 금리 인상에 나선다. 지난 6월 초 유럽중앙은행(ECB)은 7월에 0.25%포인트를 올리겠다고 했지만, 이달 초 발표된 6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국) 물가 상승률(8.6%)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도 작년 12월 이후 5차례 연속 금리를 인상했다. 세계 통화정책의 ‘풍향계’로 불리는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도 지난 7월 13일 ‘빅스텝(Big step)’을 밟았다.

신흥국은 이미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제 충격으로 통화 운용 여력이 작은 유럽과의 격차를 키워 유로화 약세와 시장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역사의 흐름을 뒤돌아보면 연준(Fed)이 고물가를 잡기 위해 돈줄을 조일 때 신흥국에선 ‘긴축 발작(Taper tantrum │ 신흥국에 유입된 자본이 이탈하면서 발생하는 충격)’이 일어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 신흥국에 투자한 외국인 자금이 일제히 빠져나가면서 발생하는 충격이다. 올 2분기 아시아 7개국의 외국인 이탈 자금은 400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 주식시장에서도 6월에 30억 달러가 순유출됐다. 경상·재정수지 적자가 동반되면 이탈 흐름은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도 이제는 달러 창고가 넉넉하다는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6월 말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전달보다 94억3,000만 달러가 줄어든 4,382억8,000만 달러이지만 순식간에 증발할 수 있다. 3분기 성장률이 추락하고 가계·기업 부실이 확산하면 금융 시스템까지 흔들릴 수 있다. 문제는 외국인 ‘엑소더스(Exodus │ 대탈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면, 달러 강세가 강화되며,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더 이탈하기 쉽다. 외국인들이 원화를 팔고 떠나면 원화 가치가 더 하락해 환율 상승의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셀 코리아(Sell Korea │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다시 파는 것)’만은 막아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정부는 한미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등 자본 엑소더스(Exodus)를 막기 위한 다층적 시장 안전판을 구축해야 한다. 선제적으로 한·미 간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 자국의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의 통화를 빌리는 통화교환) 체결을 통한 외환시장에 켜켜이 쌓인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해야만 한다. 통화스와프(Currency swap)란 외환위기에 대비하여 자국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비상시에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차입할 수 있도록 약속하는 계약이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위기 상황에서 달러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율 안전판’으로 여겨진다. 한미 통화스와프(Currency swap)는 위기 때 원화를 미국에 맡기고 그만큼의 달러를 빌려오는 제도다. 위기 상황을 대비해 평소 쌓아두는 외환보유액을 적금이라고 한다면 통화스와프(Currency swap)는 마이너스 통장의 역할이다.

결국 통화스와프(Currency swap)는 외환 안전판 역할을 한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당시 체결된 적도 있다. 오는 7월 19일 미국 재닛 옐런(Janet Louise Yellen) 재무장관이 방한한다. 이에 발맞춰 정치권에선 “통화 스와프 체결이 성사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미국 재무성 업무가 아니고 미국 연준(Fed)의 역할이기 때문에 재닛 옐런 장관과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는 주장도 없지 않지만, 현재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는 미국 6조 달러 환수로 인한 ‘긴축 발작(Taper tantrum)’에 대비하는 것인 만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의 방한은 좋은 계기다. 성사만 되면 미국에 ‘달러화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는 셈인데, 그 상징성만으로도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크다.

환율 안정은 수입 물가를 끌어내려 결국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한·미 간 별도 계약은 미국이 과거 여러 국가와 동시에 체결한 것과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북한의 도발 등을 막기 위한 경제·안보 동맹 차원에서 접근하면 충분히 통화 스와프 체결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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