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이사장
박근종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 이사장]한국경제가 경기 경착륙 위험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경제학회가 지나 7월 11일부터 25일까지 경제학자 39명을 대상으로 ‘스태그플레이션(Stagnation │ 고물가 속 경기침체)'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전문가 56%가 ‘진입 단계(44%)’거나 ‘진행된 상태(12%)’라고 답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9월 18일 경제 전문가 34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경기진단 설문에서도 응답 전문가의 55.9%는 ‘스태그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는 초기 진입 단계(44.1%)’거나 ‘스태그플레이션이 상당히 진행돼 있다(11.8%)’라고 답해 한국 경제가 이미 어느 정도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진단했다.

한국경제학회가 조사한 경제학자 10명 중 6명(59%)은 올 경제성장률이 한국은행 전망치(2.6%)에 못 미쳐 2.0~2.5%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고, 한국경제신문이 조사한 전문가 10명 중 7명(70.7%)도 2.3~2.5% 미만(32.4%)이거나 2~2.3% 미만(26.5%), 2% 미만(11.8%)으로 답해 한국은행 전망치(2.6%)보다 낮은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뿐만 아니라 통계청이 지난 9월 2일 발표한 ‘2022년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1% 하락하였으나 전년 동월 대비 5.7% 상승했고, 지난 9월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이틀 연속 연고점을 경신하며 전날 종가 1,390.9원보다 2.8원 오른 1,393.7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20일 1,412.5원 이후 13년 6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그야말로 경기침체 위기가 발등의 불이다.

세계 경제 역시 침체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9월 15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세계은행(WB)은 이날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인 통화정책 긴축 기조로 세계 3대 경제권인 미국, 중국, 유로존이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라며 “내년 글로벌 경제는 자그마한 타격만 입어도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현재 글로벌 경제는 1970년대 이후 가장 가파른 속도로 침체에 빠져들고 있으며, 소비자 신뢰는 이미 직전 침체기보다 더 급격히 하락했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2분기 성장률이 0.4%로 이미 0%대로 추락했고, 마지노선으로 간주하던 ‘달러당 7위안’이 무너진 ‘포치(破七)’ 상황이 신흥국의 진퇴양난의 경제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안일한 인식과 대증요법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 16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9월호’에서 “우리 경제는 고용과 대면서비스업 회복으로 내수가 완만한 개선을 이어가고 있으나, 대외요인 등으로 높은 수준의 물가가 지속되고 경제심리도 일부 영향을 받는 가운데 향후 수출회복세 약화 등 경기둔화가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또한 “경기적 측면에서 지난 3~4개월 동안 특별한 변수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라면서 “전반적으로 수출 회복세는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경기 둔화 확대’ 등 강한 톤을 쓰기에는 아직까지 소비 측면에서 회복세가 지속되는 흐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현재 경기 상황을 ‘둔화 우려’로, 대외 환경을 ‘하방 위험 지속’으로 진단했다.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를 넘어 ‘스태그플레이션(Stagnation)’을 경고하는 국내외 전문가들과는 사뭇 다른 인식을 하고 있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악재가 터지거나 시장 발작이 목격되면 허겁지겁 수습하는 단편적 대응만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대목은 부실한 환율 대응이다. 지난 7월 마지막 거래일 대비 9월 12일의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5.9%나 하락했지만, 가수요와 환투기 차단 노력은 미미했다. 또한 국제금융에서 이자율과 환율을 고려한 투자조건은 국가 간에 같아지게 되는 ‘이자율 평형 조건(Interest parity condition)’인데, 우리나라 이자율이 미국보다 낮은데도 한국에 투자하게 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원·달러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환율 불안을 보며 우리가 두려워 해야할 것은 외환 투기세력이 아닌 한·미 금리 역전의 장기화이고, 이를 막는 작업의 출발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미 기준금리 역전을 막아야 하는데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의 연이은‘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란 공격적이고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에도 한국은 여전히 ‘베이비 스텝(Baby step │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의 종종걸음이다.

급기야 달러당 1,400원이 위협받자 부랴부랴 구두 개입과 미세조정에 나섰지만, 약발은 커 보이지 않고 외환당국의 권위만 손상됐다는 게 중론이다. 뒤늦게 한·미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가능성을 거론해 1,400원 선을 지켜낼 정도로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뒷북 산업정책도 아둔해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산업의 쌀이라고 하는 반도체가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인데도 미국 일본 등이 현금을 뿌려가며 반도체 투자 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의 반도체 인프라 구축 예산 확보는 국회의 장벽에 막혔다. 반도체 인재 양성도 발표만 있었을 뿐 실행계획은 오리무중이고 지난달 4일 발의한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은 50일이 넘도록 국회에서 논의조차 못하고 실종된 상태이다.

미국의 일방적인‘인플레이션 감축법(IRA│The Inflation Reduction act)’대응도 너무나 즉흥적이었다는 평가다. 미국 양대 완성차회사인 포드를 이끄는 짐 팔리(Jim Farley0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방한해 해법을 찾아야 할 만큼 무리한 법안인데도 입법과정은 물론 사후 조율 과정에 이르기까지 전반에 걸쳐 우리 대처는 초보적이고 미진했다.

우리 경제가 봉착한 현실은 대외여건의 악화로 인해 수출이 타격을 받아 증가율이 둔화하고 있는 등 무역적자가 심화하고 있는 데다 고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내수 진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엎친대 겹친격으로 기업 재고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오버슈팅(Overshooting)되어 왔던 생산이 급감할 경우 경기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향후 정책당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안일한 인식과 대증요법으론 결단코 해결이 안된다. 따라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한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절실하고 화급하다. 정부가 무역수지 개선, 중장기 수출경쟁력 강화 지원 등 수출 종합 전략을 발표한 만큼 조속히 실행하고 내수 진작을 위한 다양하고 다각적이며 다층적인 프로그램도 서둘러야 한다. 세계은행(WB) 데이비드 맬패스(David Malpass) 총재의 “침체 국면을 피하기 위해선 ‘소비 억제’ 대신 ‘투자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는 조언대로 경기 부진을 막기 위한 기업들의 투자 확대에 초점을 맞춰 총력 대응해야 한다.

잠시 뒷짐 지고 한눈파는 사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부터 명료하게 가다듬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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