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박근종 이사장]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이 지난 9월 21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큰 폭으로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의 거인 스텝을 올해 들어서 세 번씩이나 걸음으로써 미국 기준금리는 3.00% ∼ 3.25%로 현행 한국의 기준금리 2.50%보다 0.50% ∼ 0.75%포인트나 높아졌다.

여파로 지난 9월 29일 코스피(KOSPI) 지수는 2170.93에 거래를 마치며 2,100선까지 밀렸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9월 들어 12.18%인 301.12(8월 31일 2472.05 → 9월 29일 2170.93)이나 하락했다. 코스피 지수는 2년 2개월 만에 2,200선마저 깨지며 연저점을 재차 경신했다. 8월 말 800선을 넘었던 코스닥(KOSDAQ) 지수도 670선까지 떨어지며 9월 들어 16.35%인 131.97(8월 31일 807.04 → 9월 29일 675.07)이나 하락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38.9원으로 여전히 강(强)달러가 이어지며, 위험자산으로 꼽히는 한국 증시에서 돈을 찾아 안전한 투자처로 옮기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계속 이탈하면서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시가총액 비중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30%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코스피에서 외국인의 시총 비중이 30%를 밑돈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7월 13일 29.92% 이후 전무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14년 8개월 만의 최고치로 끌어올린 건 경기침체를 무릅쓰고라도 8%대 물가 상승세부터 꺾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이는 고물가를 벗어나기 위한 당연한 조치다. 금리가 상승하면 시중에 돈이 줄어든다. 달러화는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과 무역에서 기본 통화로 쓰인다.

달러가 감소하면 수요가 늘어나 강세를 띠는 것이다. 유로화나 엔화 같은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올해 2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킹 달러(King dollar │ 달러 초강세)’가 됐다. 지난해 말 1달러 가치는 1188.8원이었지만 지금은 21%인 250.10원이나 오른 1,438.9원을 줘야 한다. 달러화 강세만큼 원화 가치는 그만큼 떨어진 것이다.

세계화된 경제체제에서 모든 국가의 통화정책은 타국 통화정책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만 국가별 통화정책의 자율성과 영향력은 결코 대칭적이지 못하다. 미국 달러는 국제단위의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화폐로 이른바 국제 기축통화(Key Currency)로 기능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은 가장 높은 자율성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국제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국제적 수요가 심각하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연방준비제도(Fed)는 달러의 대외적인 신뢰성 훼손을 상대적으로 덜 고려하면서 자국의 국내경제적 상황에 초점을 맞춰 통화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또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은 국제거래에 필수적인 미국 달러의 상대적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계 경제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국가는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비대칭적인 자율성과 영향력을 보유하고 행사할 수 있는 미국의 통화정책은 국제통화체제에 부정적 외부효과를 만들어낸다. 지금처럼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다른 국가들은 자본유출로 인한 통화가치 하락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수입 물가 상승이나 대외부채가 높은 국가에서는 금융위기를 야기하기도 한다. 반대로 경제회복을 위해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인하하면 다른 국가들은 자본유입과 통화가치 상승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거품경제를 형성하고 수출경쟁력을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킹 달러(King dollar)’는 미국 이외 국가를 곤경에 빠뜨린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곡물과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가격과 환율 상승에 따른 이중 부담에 직면했다. 이는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반면 미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높아졌다. 최근 유럽에서 부동산 매입에 나서는 미국인이 크게 늘었다고 하는데 이를 방증하기에 충분하다.

실제적으로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가파른 금리 인상은 다른 국가들에게는 고물가와 고금리, 자본 유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연준(Fed)의 행보가 다른 나라의 경제를 희생시키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근린 궁핍화(Beggar thy neighbour)’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영국의 국제 비즈니스 신문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 │ FT)는 지난 9월 22일(현지 시각) 연준(Fed)의 금리 인상이 전 세계적인 차입비용의 증가를 유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준(Fed)의 금리 인상은 미국 내 물가를 잡는 데는 효과를 발휘하겠지만, 무역 상대국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과 달러화 강세가 다른 나라를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미국도 잘 알터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웃 국가를 가난하게 만드는 ‘근린 궁핍화(Beggar thy neighbour)’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에서 기인한 것으로 ‘강(强)달러’가 지금은 세계적 문제가 되었지만, 다음엔 미국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달러가 미국의 문제일 때, 달러 가치가 큰 폭 하락했던 사례가 두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1985년 2월에서 1992년 8월 사이에 주요 선진국 통화로 구성된 달러지수가 51% 급락했다.

특히 1985년 9월 플라자합의는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두 번째는 2000년대 들어서 정보통신 혁명 거품이 붕괴하면서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미국 비중이 2001년 31%에서 2008년에는 23%로 낮아져 달러 가치도 2002년 2월에서 2008년 3월 사이에 40% 떨어졌다.

지난 8월 28일(현지 시각) 미국 투자 전문 매체 마켓워치(Market Watch)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전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하버드대 제이슨 퍼먼(Jason Furman) 교수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준(Fed)이 인플레이션(Inflation │ 물가 상승)을 낮추기 위해 내년 말까지 금리를 최대 5.5% 인상할 수 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제이슨 퍼먼(Jason Furman) 교수는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큰 수요를 부추기던 미국이 이제는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라며 “(연준의 금리 인상이) 미국의 수요는 줄일 수 있지만 강달러가 다른 나라에 일으킨 인플레이션은 해결하지 못한다.”라고 꼬집었다. 그렇다.

미국은 지금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은 저임금으로 만든 값싼 공산품으로 디플레이션(Deflation │ 물가 하락)을 수출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강(强)달러’가 인플레이션 수출의 무기다. ‘제1의 기축통화’라는 달러의 특수한 지위 덕분이다.

1971년 주요 10개국(G10) 회의에서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고 불평하는 유럽 재무장관에게 당시 미국 닉슨 행정부의 존 코널리(John Connally) 재무부 장관이 경고한 “달러는 우리 화폐지만 당신들 문제야(It’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라는 말이 떠오른다. 미국이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기술 공급망을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정책을 가속화하면서, 미국에만 유리하게 꿰맞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The Inflation Reduction Act)’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러나 ‘근린궁핍화(Beggar thy neighbour)’ 정책은 보복을 유발하고, 그 보복은 장기적으로 경제 규모를 축소시켜 결국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미국의 경제학자 메릴 플로드(Merrill Flood)와 멜빈 드레셔(Melvin Dresher)의 연구에서 시작된 게임이론으로 프린스턴 대학교의 수학자 앨버트 터커(Albert Tucker)가 유죄 인정에 대한 협상을 하는 죄수의 상황에 적용하면서 이름 붙여진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비슷하다. 이 게임이론은 서로 협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론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선의를 믿지 못하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선택하여 불리한 결과를 맞게 되는 모형으로 공범인 두 죄수가 자신만의 이익을 좇는 선택을 해 끝내 공멸하는 것과 같다.

한편,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9월 2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개최한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위험요인과 국제 금융체제의 미래’ 주제의 G20 글로벌 금융안정 컨퍼런스에서는 고물가 대응을 위한 미국의 통화긴축과 이에 따른 달러 가치 상승이 세계경제에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가 1980년대에 비해 클 가능성이 있으며, 신흥국들이 1980년대와 같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기조연설에 나선 미국 UC버클리대 모리스 옵스펠트(Maurice Obstfeld) 교수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미국의 통화 긴축과 그에 따른 달러가치 상승이 세계경제에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가 1980년대보다 클 것이라며 고소득 국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각국이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절상하고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각국 중앙은행의 협력으로 이를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대와 협력처럼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점점 더 희석되고 엷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각자도생(各自圖生)과 국익우선(國益于先)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따라서‘미국 우선주의’에 흔들리는 ‘한·미 가치동맹’의 안정화와 국익을 위한 돌파구를 서둘러 찾고, ‘근린 궁핍화(Beggar thy neighbour)’ 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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