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 최봄샘 기자]

최한나 시인
최한나 시인

 

의자가 운다

 

문득 당신이 의자였다는 사실을

나도 의자가 되고 보니 알게 되었다

까끌까끌한 수염이 돋아난 의자

술 냄새 나던 앉은 당신에 앉곤 했었다

우는 의자를 불러

사탕 한 알 입에 넣어주던 쉰내 나던 의자

너무 커버린 의자를

아직도 앉혀보고 싶다는 듯

뼈마디마다 고여 있는 눈물을 툭툭 털어내곤 한다

 

오늘, 울고 있는 의자를 버리고 싶다

세상에 어느 불효도 앉히지 못할 낡아빠진 의자

자꾸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한다

노을을 덮고 때론

세상모르고 낮잠에 들기도 한다

자꾸만 어느 의자로 가서 앉으려고 한다

 

앉아있는 의자는 누구든 앉힐 수 있고

앉은 의자만이 누구든 앉힐 수 있다

식어버린 무릎을 펴고 방안을 서성거리는 의자를

가끔 갖다 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등을 돌리고 어느 의자에서 아직

일어서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리 오렴, 어린 아이를 부르는 의자

너도 이곳에 앉아

훗날의 불효를 배워라,

두 팔 벌려 부르는 의자

 

내가 의자에 앉아 배운 것은 불효뿐이다

 

 - 최한나 시집 <꽃은 떨어질 때 웃는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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