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중앙뉴스= 박근종]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30일 실업급여 수급을 지금보다 더 까다롭게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지속이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5차 고용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한 대로 일자리는 국민의 삶의 기반이지 터전이다. 따라서 지속이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국민 행복과 국가 경제 성장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그러나 저성장이 고착화(固着化)하고 산업·인구구조가 대전환(大轉換)하는 위기 상황에서 우리 노동시장의 일자리 창출력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우선, 지속이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규제혁신, 투자 확대 등 경제산업정책과 함께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한데도, 그간 우리 일자리 정책은 현금지원, 직접 일자리 확대 등 단기·임시적인 단방처방(單方處方)으로 당장 위기를 모면하는 선택을 해오는 데만 급급했다.

이에 따라 미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민간의 일자리 창출 여건을 조성하는 데는 미흡한 측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또한, 고용률의 총량적 목표에만 머물러 전체 고용률은 증가추세에 있으나 청년, 여성 등 취약계층의 선진국과의 고용격차는 여전하다. 최근 심화하고 있는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 문제와 경기 불확실성도 노동시장의 위협요인으로 작용하여 노동시장 여건 악화가 우려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세대까지 지속이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노동 개혁과 함께 일자리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긴요하다. 이러한 배경하에 고용노동부가 이날 국무회의에서 발표한 「제5차 고용정책 기본계획」에는 “지속이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로 혁신성장 국가 도약”을 비전으로 실업급여와 저임금 노동자의 EITC(근로장려금 │ Earned Income Tax Credit) 등 공공 지원 축소에 초점을 맞춘 5대 일자리 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통해 민간의 일자리 창출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5대 일자리 정책 패러다임 전환 주요 내용은 △고용 취약계층 일자리 장벽 제거(청년의 원활한 노동시장 진입 촉진, 여성의 경력단절 사전 예방, 고령자의 계속 고용 기반 조성, 장애인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일자리 불확실성 선제 대응체계 구축(고용둔화 선제 대응, 고용 위기 조기 포착시스템 구축), △인력수급 미스매치 해소(직능수준별 맞춤형 인력양성 및 공급, 업종·지역·기업별 빈 일자리 특별관리, 구인·구직 매칭 고용서비스 고도화), △노동시장 참여 촉진형 고용 안전망 구축(근로빈곤층의 근로자 도약 지원, 일자리로의 액티베이션(Activation) 강화, 촘촘한 고용안전망 강화), △체질 개선을 통한 혁신성장 지원(일자리 사업의 균형 회복, 신산업분야 일자리 창출 지원, 사회서비스분야 일자리 확충, 법·제도·문화 혁신) 등이다.

고용노동부는 먼저 실업급여 의존을 막기 위해 반복 수급자의 실업급여 액수를 줄이기로 했다. 현재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더 낮추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지원의 문턱을 높여 실업급여를 둘러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근원적으로 막겠다는 의도다. 기초생활수급자를 고용정책인 국민취업지원제도에 편입시켜 적극적 구직 노력 의무를 부과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대신 구직자들에게 취업 지원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찾아주는 고용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고용보험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실업급여의 누수를 막는 것은 필요한 조치다. 취약계층을 노동시장에 참여시키겠다는 구상도 당연히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등 산업의 이중구조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마치 실업이 ‘구직자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인 양 몰아가서는 매우 위험하다. ‘일자리 미스매치’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의 열악한 노동 여건이다.

정부의 고용정책 변화가 현장에서 ‘아무 데나 일단 취업하라.’라는 메시지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업 촉진’ 정책을 통해 청년·여성·고령자의 고용률을 2021년보다 2027년까지 5%포인트씩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고용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고용률 목표 달성에만 매달릴 경우, 노동 취약계층이 열악한 일자리만 전전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만일 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명분으로 저임금 노동자 예비군을 양산하겠다는 의도라면 대단히 구시대적인 발상과 행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27일 ‘고용정책심의회’를 거쳐 1월 29일 발표한 서비스 중심으로 고용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한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에서 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것도 이런 우려를 키운다.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은 실업급여(구직급여)를 뜯어고치겠다는 게 주요 골자이다. 핵심은 고용 복지+센터(고용센터) 본연의 취업·채용 서비스의 적극적 역할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복지·실업급여 수급자 등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한다. 급변하는 노동시장 환경에 대응하여 구직자 역량 강화, 기업 성장까지 지원하며, 기업의 인력난을 적극적으로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실업급여는 원치 않게 직장에서 퇴직한 실업자의 생계를 지원하고, 재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1995년 도입됐다. 고용보험 가입자는 비자발적으로 실직하면 최대 9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매달 받는 금액은 직전 평균임금의 60%다. 최소한으로 받는 실업급여 하한액이 2022년 기준 하루 6만 120원이라 매달 180만 원 이상 받는다. 올해 주 40시간 근무기준 월 최저임금은 201만 580원, 실업급여 하한액은 184만 7,040원이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4주에 1번 이상 면접을 보거나 구직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등 재취업 활동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취업할 의지 없이 면접만 보거나 구직 프로그램에 참여만 하는 식으로 재취업 활동을 인정받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업급여 하한액이 2017년에 비해 32%나 오르면서 액수의 차이가 확 줄었다. 직장을 나가 교통비, 점심값, 그리고 각종 세금을 공제하면 차라리 일을 안 하고 실업급여를 타 먹는 게 훨씬 낫다는 인식이 팽배할 수밖에 없는 제도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한국 실업급여의 경우 상대적으로 짧은 기여 기간과 높은 급여 하한액이 근로 의욕과 재취업 유인을 낮춘다고 지적한 바도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단기 아르바이트로 고용보험 가입 기간 6개월을 채운 뒤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반복해서 타 먹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만연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고용보험 가입 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10개월로 늘리고 실업급여 하한액도 현실에 맞게 대폭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경우 수급액을 최대 50%까지 감액하겠다고 한다. 다소 늦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지만 옳은 방향이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추이는 2017년 120만 명에서 2021년 178만 명으로 증가하였고, 2022년도에도 163만 명 수준이다. 5년 사이에 무려 40%가량 급증했는데. 최근 5년간 세 번 이상 받은 이른바 ‘메뚜기 실직자’가 무려 10만 명이 훌쩍 넘고, 이들이 받아 간 돈만 5,000억 원에 이른다니 심각하다 못해 개탄스러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2017년까지만 해도 10조 원 이상 쌓여있던 고용보험 재정이 거의 바닥 상태에 이른 것은 이처럼 제도의 허점과 실업자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기저에 깔려 복합적으로 상승 작용한 결과다.

고질적인 ‘실업급여 상습 수급’은 적자에 빠진 고용보험기금 재정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직전 5년 이내에 3차례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2016년 기준 7만 7,000명에서 2021년 기준 10만 1,000명으로 대폭 늘었다. 이들이 받아 간 금액은 같은 기간 2,180억 원에서 4,990억 원으로 2.32배가 넘게 불어났다. 이 때문에 많은 보험료를 내고도 실업급여를 받지 않은 사람과의 형평성이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반복 수급자의 혜택을 줄이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5년 이내에 실업급여를 3회 이상 받으면 지급액을 최대 50% 줄이고, 급여 수령 대기기간을 최대 4주로 늘리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다만, 이직이 잦은 일용직 등 취약계층은 예외로 뒀다. 반복 수급자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의 사업주 보험료를 올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국회에 계류된 채 논의가 별다른 진전이 없이 지지부진하다. 구직 노력을 게을리하는 ‘실업급여 중독자’를 양산하는 비정상적인 제도는 하루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실업급여 반복 수급을 방치하는 경우 청년 등 실제 보호가 필요한 계층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 정부가 여론 수렴 등을 통해 오는 6월 실업급여 제도 개선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다행스럽긴 하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인해 생긴 잦은 이직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수급 요건 강화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무엇 보다 속도를 내기 위해선 정치권, 노동계의 동참이 수반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선 국회에 계류 중인 「고용보험법」,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개정안부터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실업자에게 일할 의욕을 북돋아 주고 고용보험 재정건전성도 지킬 수 있는 실업급여 제도의 대수술은 실기해선 결단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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