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중앙뉴스= 박근종]검사 출신인 정 아무개 변호사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아들의 ‘학교폭력(학폭 │ 學暴) 사건’으로 하루 만에 낙마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냉엄(冷嚴)하고 엄혹(嚴酷)하다 못해 비루(鄙陋)하고 저열(低劣)한 이면이 수면 위로 송두리째 고스란히 떠 올랐다.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조처(措處)가 힘 있는 부모에 의해 철저히 교란(攪亂)되고 유린(蹂躪)되는 현실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정 변호사 자녀 학폭 사태’ 후폭풍이 참으로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다.

물론 임명 하루 만에 물러났다지만, 학교폭력 가해자인 자녀의 강제 전학을 막기 위해 ‘전학 처분 취소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는 등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고 악착같이 사용하여 ‘끝장 소송’을 진행한 이들 부자에 대한 여론의 국민적 공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모 찬스’의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겠지만, ‘정 변호사 자녀 학폭 사태’의 경우는 공정성 훼손을 넘어 피해 학생에 대한 가혹한 2차 가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투영되고 있어 더욱 참담하다. 가해자가 결국 처분 이후 1년간 더 등교한 사실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지적이다. 특히, 법 제도의 허점을 악용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보완 대책이 화급하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법원 판결문을 보면, 사회적 공분을 살 수밖에 없는 정 변호사의 과도한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17년 5월부터 지난 2018년 초까지 동급생 2명에게 욕설을 비롯한 언어폭력을 지속해서 행사한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기숙사 룸메이트이기도 한 피해자에게 “제주도에서 온 돼지 XX”, “빨갱이 XX”, “넌 돼지라 냄새가 난다.”, “더러우니까 꺼져라” 등과 같은 언어폭력을 수차례나 가했다. 피해 당사자인 룸메이트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와 공황장애 등을 진단받고 두 차례나 입원 치료를 받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학교 측은 신고된 사실을 확인해 2018년 3월 정 변호사의 아들에게 전학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현직 검찰 간부 검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인권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하는 인권감독관이라는 중요 보직에 있으면서도 그 직위에 맞는 공익의 대표자 노릇이나 인권 옹호자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직 본인의 아들인 가해자 챙기기에만 눈이 멀어 교육청 재심 청구, 행정소송,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 온갖 법적 조치를 총동원해 아들의 전학을 막으려는 데만 급급했다.

우선 아들의 전학 조처에 불복해 ‘강원도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고, 위원회는 두 달 뒤 전학 처분을 취소했다. 그런데 피해자는 가해자와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자기가 변호사 선임해서 무죄판결 받았다고 떠들고 다니고, 애들은 그걸 듣고 웃고. 정말 악마인 것 같다.”라고 말하는 피해자의 입장은 처절할 수밖에 없다.

이에 피해자 측은 가해자의 전학 취소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고, 가해자는 다시 전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정 변호사는 전학 처분이 부당하다며 2018년 7월 춘천지방법원에 징계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징계 효력을 선고 공판 때까지 멈춰달라는 집행정지도 신청했다. 학교에 제출했던 2차 진술서는 자신이 직접 ‘코치’를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정 변호사가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서 최종 패소했다지만, ‘시간 끌기’라는 목적은 달성됐다고 봐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의 아들은 대법원에서 패소한 뒤인 2019년 2월에야 전학 조처됐으며, 이듬해 정시로 서울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현직 검사가 법 지식을 동원해 장기 소송전을 벌이는 동안, 피해 학생은 가해자의 1차 전학 처분이 취소된 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계속 듣는 등 고통의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내야만 했다고 한다. ‘버티면 이긴다’라는 가당치도 않은 명제가 학교폭력 가해자의 승리 공식이라니, 그것도 ‘부모 찬스’가 뒤를 받치고 있다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너무나 황당하고 여간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가해자가 소송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어떻게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것인지부터, 수시는 물론 정시에도 학교폭력을 반영하도록 의무화할 방법은 무엇인지, 3학년 2학기 등 구멍을 메울 방법은 없는지 등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많다. 학교폭력 기록을 졸업 2년 후면 모두 없애주는 법이 이대로 괜찮은지도 면밀하고 촘촘히 따져봐야 한다.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처럼 피해자는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데 가해자가 웃으며 사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만 한다. 학교폭력은 한 인생의 미래의 꿈을 짓밟고 영혼마저 파괴하는 사회악(惡)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대학입시에 불이익을 주겠다던 교육부 정책에도 허점이 드러났다. 정시는 수능 성적 100%로 뽑고, 학교폭력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대학 측의 재량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어떤 불이익을 받았는지는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정 변호사의 사례에서 보듯 학교폭력 가해자 배후에는 안타깝게도 자식들의 잘못을 감싸기만 하는 사회 지도층 부모가 의외로 많다. 내 자식만 좋은 대학 가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적 발상은 참으로 잘못된 판단이다. 그런 발상이 자녀들에게도 그릇된 영향을 미치고 폭력을 조장한다는 사실을 깊이 명찰하고 깨달아야 한다.

미국 철학자 ‘에이브러햄 캐플런(Abraham Kaplan)’은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다닐 것이다”라고 했고,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는 1966년에 그의 저서 「과학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Science)」에서 “누구나 망치를 쥐면 본능적으로 두드릴 대상부터 찾는다”라는 소위 ‘망치의 법칙’을 언급했다. 1989년 방영된 문화방송 월화 미니시리즈 ‘완장’이 떠오른다. 조그마한 권력과 우월의식으로 망치를 들었다고 못만 찾고, 완장을 찼다고 권위 의식에 도취해서 폭력과 학대를 자행하는 것은 불법이며 반인권 범죄다.

스페인 교육자 ‘프란시스코 페레(Francisco Ferrer)’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강조하고, “가장 대표적인 권위의 행태는 ‘폭력’이라며, 제아무리 선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나쁜 것”이라 했다. 다른 사람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고 가슴에 멍을 주며 영혼에 주름살을 잡는 학교폭력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설사 그것이 언어폭력이라고 하더라도 학교폭력임은 분명하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제1호는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보통신 매체가 발달하면서 과거 단순한 폭행이나 면대면 언어폭력으로 이루어지던 학교폭력에서 진화하여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언어폭력, 모욕적인 게시글 작성 등 피해자를 괴롭힐 수 있는 수단들이 포괄적으로 학교폭력의 유형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렇다. 어떠한 경우도 학교폭력은 용인되고 용납될 수도 없다. 반드시 발본색원(拔本塞源) 뿌리를 뽑아 근절하고 추방해야만 한다. 교육부는 피해자 중심의 시각에서 학교폭력을 추상(秋霜)같이 준엄(峻嚴)하고 엄정(嚴正)하게 관리해야 한다. 피해자는 인생이 망가지는데 가해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면 이 땅에 공정과 정의는 설 곳이 없다. 근본적으로 학생들에게 나와 생각이 같지 않거나 처지가 다른 친구도 품을 수 있도록 포용과 배려를 가르쳐야 한다.

학교폭력이 만연하는데도 이를 바로 잡지 못하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야 할 학교 공교육은 분명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지면 우리 사회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공직자 검증 항목에 본인은 물론 자녀의 학교폭력 여부를 포함해야 한다. “불법은 항상 성실하고, 악행은 치밀하다. 죄를 죄로 덮어야 하기 때문이다.” 뭔가 기시감(旣視感)이 있어 보인다. ‘더 글로리2’가 제시하는 학교폭력의 민낯이다.

더구나 가해 학생 부모가 소송전(訴訟戰)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학교폭력 관련 법률 시장 규모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고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전국 초·중·고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심의 건수는 9,796건이나 되었다. 2학기 심의 건수까지 집계되면 지난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 건수는 2만 건에 육박할 전망이다.

학교폭력 소송의 목적이 자녀의 입시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을 끌어 입학시험 전에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사실이 기록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다. 물론 능력 있고 여유 있는 일부 학부모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테지만, 피해 학생이 감당해야 할 끔찍한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빗나간 자기 자식 사랑이 법률 시장 풍광까지 바꿔놓고 있는 세태다 보니 참으로 개탄스러움만 더한다.

무엇보다도 학교폭력은 행위 자체도 잘못이지만,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더 큰 잘못이다. 그동안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다루지 않고 온정주의(溫情主義)로 치우친 관행도 문제다. 게다가 피해자의 피해 극복을 돕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가는 본인의 삶을 더 큰 나락(奈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더군다나 다양한 영역에서 학교폭력 전력(前歷)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를 잃거나 전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며 사회에 경종(警鐘)을 울리고 있다.

학창 시절 순간의 잘못된 행동이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두고두고 풀지 못할 족쇄(足鎖)가 된다는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에도 유명인의 학교폭력에 대한 뒤늦은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가도 피해자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챙겨봐야 할 이유다. 3학년 2학기에 최종심 판결이 나더라도 대학 쪽에 결과 통보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비롯해 제도적 보완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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