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중앙뉴스= 박근종]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2월 23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함으로써 2021년 8월 이후 2023년 1월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일단 멈췄다. 오는 4월 11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시장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코로나 위기를 맞아 0.5%까지 떨어뜨렸던 초저금리가 유발한 통화팽창으로 소비자물가가 뛰자 이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선 후 총 10회에 걸쳐 기준금리를 0.5%에서 3.5%까지 무려 3.0%포인트나 올렸다. 그동안 저금리 시대를 마감하고 고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부동산시장에서는 크고 작은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부동산가격이 급락하면서 전세가격 마저 덩달아 폭락해 보증금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이른바 깡통전세로, 빌라왕 사태를 비롯한 각종 전세사기로 전 재산을 잃고 오갈 곳을 잃은 세입자들 양산이다. 전세피해는 임대인이 의도적이든 아니듯 고스란히 힘없고 가난한 세입자 몫이라는 점에서 결단코 막아야만 한다.

급기야 지난 2월 2일 정부 차원의 ‘전세사기 피해근절 종합대책’이 발표됐지만 피해자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턱없이 낮았다.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은 크게 예방, 피해 지원, 단속 및 처벌 강화로 이뤄져 있다. 문제는 대책이 예방에는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이미 사기를 당한 피해자를 위한 구제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원책은 사실상 ‘저리긴급대출’과 ‘긴급주거’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전세사기 유형은 크게 집주인이 처음부터 매매가격보다 높은 전세가격을 세입자에게 제시하고 계약을 체결한 후 만기에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유형과 전세금을 시장가격에 맞게 정상 거래했으나 이후 부동산가격이 하락하거나 전세가격이 하락해 돌려주지 못하는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더 세분해 보면, ▷이중계약, ▷불법 중개사무소, ▷중복계약, ▷깡통전세 등이다.

특히, 세입자에게 깡통전세 계약, 임대인의 대항력 악용, 중요 사실 미고지 및 허위고지, 사기 계약, 무권리자의 계약 등이 세입자를 울리는 전세사기 행위들이 큰 문제다. 그래서 정부는 전세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SGI), 한국주택금융공사(HF) 등에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를 시행해 왔다. 대다수 전세 세입자들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가입하고 있으며, 보증회사는 세입자가 전세 만기 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 이를 대신 지급해주고 추후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세입자들이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통해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 평균 55.75일이 걸린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동아일보는 역(逆)전세와 전세사기 등으로 전세금 반환 신청이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가 HUG에서 보증금을 돌려받기까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보도했다. HUG가 지난 4월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보증금 반환 신청 5,078건의 46.1%인 2,340건은 실제 지급까지 5주 이상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27건(4.5%)은 올해 3월 셋째 주까지도 보증금 반환이 안 됐다. ‘30일 안에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약관이 있는데도 실상은 5주 이상 기다리는 세입자가 절반 이상인 셈이다.

지난 3월 19일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에 따르면, 전세 세입자가 계약 기간 종료 후에도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보증사고가 지난 2월 처음으로 무려 1,121건이나 발생했다. 올해 1월 968건에 이어 두 달 연속 역대 최다 기록이다. 보증 사고 금액 역시 올해 1월 2,232억 원에서 지난 2월 2,542억 원으로 13.9% 늘었다. 마찬가지로 역대 최다 금액이다. 지난해 전셋값 하락과 전세 사기 등으로 급증했던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새해 들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을 두 번 울리는 전세 보증보험 늑장 반환이란 지적이다.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떼이고 HUG에서도 전세금을 못 받는 세입자들이 장기간 대출 이자를 떠안거나 이사를 못 가는 등 추가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지탄이 나온다. 이에 대해 HUG는 “최근 전세보증 사고가 급증하면서 보증이행에 과도한 기간이 소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라며 “기사에서 언급된 보증이행 기간은 심사 완료 후 임차인이 기존 집에서 퇴거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통상 심사절차가 1개월 이내에 완료되고 있음에도 임차인의 퇴거가 늦어질 경우 보증금 반환 이행이 연기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라며, “HUG는 앞으로 전세금반환보증 이행을 단축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임차인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면서 사정이 더욱 악화되어 3개월 넘게 전세금 반환을 기다려야 하는 세입자도 있다고 한다. 반환 신청이 접수되는 데만도 한 달 이상씩 대기해야만 할 지경이라니 여간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세금 반환보증은 세입자들이 소송 없이 보증금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장치인데, 이마저도 석 달이 넘도록 피를 말리며 기다려야 한다니 결코 가볍게 간과할 사안은 아니다. 왜냐면 이는 전세사기 여파가 남긴 충격에다 집값·전셋값 급락에 기인한 ‘깡통전세’와 ‘역전세난’이 확산하면서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떼이는 보증사고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보증사고 건수는 2015년 1건에서 매년 증가해 2019년 1,630건, 2020년 2,408건, 2021년 2,799건에 이어 지난해에는 하반기 들어 집값 및 전셋값 하락에 따른 보증사고가 급증하며 5,443건으로 전년도의 두 배 가깝게 늘었고, 올해 들어서도 두 달 만에 역대 최다 기록인 2,000건을 돌파했다.

또한 지난 4월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홍기원 의원이 HUG로부터 제출받은 ‘등록임대사업자 보증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발생한 개인 임대사업자의 전세 보증사고는 총 221건으로 집계됐다. 전년도 같은 기간 단 1건 대비 무려 221배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 연간 기준 개인 임대사업자의 보증사고는 총 135건인데, 올해 들어 두 달 만에 전년 기록을 넘어섰다. 사고금액은 올해 555억 원으로, 이 역시 지난해 1년 치 사고금액인 321억 원보다 72.9%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HUG의 반환 지연으로 세입자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한숨은 높아만 가고 눈물은 짙어만 간다. 전세금을 빨리 돌려받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하거나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대출까지 받아 이자를 물어야만 하는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보증사고는 청년·신혼부부나 서민들이 주로 임차하는 빌라,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오피스텔 등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이들에겐 전세금 반환이 더 시급하다.

더 큰 문제는 전세금 반환보증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전세 보증사고가 급증하면서 보증보험을 전담하는 HUG의 자금 여력도 한계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HUG는 자기자본의 60배까지 보증을 발급할 수 있는데, 작년 12월 말 기준 54.4배로 이미 한도에 거의 다다르고 있다. 이 때문에 HUG의 자본금을 확충하는 방안이 정부 관계 부처 간에 협의하고 있으며, 보증 발급 상한선을 자기자본의 70배로 상향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정부와 국회는 이에 대한 대책도 서둘러야만 한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2월 13일 발표한 ‘전세 레버리지 리스크 추정과 정책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7년 9월부터 작년 6월까지 갭투자(전세 레버리지 매입)방식의 거래는 73만 3,000건으로 확인됐는데 계약 갱신 청구권 제도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향후 집값이 갭투자 시점 대비 20% 하락하면 최대 29만 3,200가구(40%)에게서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발생하는 것으로 관측됐다.

즉 전세를 낀 갭투자 주택 10채 중 4채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을 떼일까 전전긍긍하는 서민들에게 소송 없이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치이자 마지막 보루인 반환보증 제도 가입이 중단되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반환보증에 기댄 세입자들이 애꿎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부와 HUG는 서둘러 보완책을 찾아야만 한다. 아울러 전세금 반환 목적을 대출에 한정해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역전세난을 근본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대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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