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중앙뉴스= 박근종]최근 한 여학생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전 과정이 고스란히 소셜미디어(SNS) 라이브 방송으로 생중계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 16일 오후 2시 30분쯤 10대 여성 A 씨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인스타그램으로 이 장면을 생중계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투신 당시에는 혼자 있었으나, 직전에는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를 통해 만난 20대 남성 B 씨와 함께 있었던 CC(폐쇄회로)TV 영상을 확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 관련성이 있는지 B 씨를 비롯해 A 씨와 통화한 이들을 조사하는 등 생전 행적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사건 당시 라이브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이는 20명가량이었지만 이후 녹화본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하며 영상을 접한 이들 다수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SNS에 누군가 해당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우연히 영상을 보게 된 네티즌들은 사람이 죽는 영상인데도 모자이크 처리가 하나도 없었다며 충격에 몸서리치고 있다.

경찰은 디시인사이드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삭제를 요청하고 자체 모니터링을 부탁했으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외국계 회사의 경우 삭제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SNS가 유명인이 극단적 선택을 할 경우 이를 모방하는 현상인 이른바‘베르테르 효과’의 매개가 되지 않을까 우려까지도 나온다.

건물 옥상에서 A 씨가 심경을 토로하는 모습부터 추락 후 119구급대가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까지 극단적 선택 전 과정이 A 씨가 켜놓은 SNS ‘라이브 방송(라방)’에 담겨 그대로 송출돼 충격이 더 크다. 심지어 마약, 총기 등 다른 반(反)사회적 콘텐츠도 여과 없이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니 그 심각성은 상상 이상이다. 실시간 콘텐츠는 정보를 다양화하고 즐길거리를 풍부하게 하는 등 순기능도 있지만,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탓에 폐해도 급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튜브 세상에서 관심은 곧바로 돈이다. 선 넘은 콘텐츠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이유다. 그래도 유튜브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나 불쾌감을 주는 영상에는 ‘노란 딱지’를 붙여 수입 창출을 제한이라도 하지만 라이브 방송은 노란 딱지가 아예 붙지 않아 실시간으로 광고를 띄울 수 있고, 구독자의 슈퍼챗(Super Chat │ 생방송 후원금)을 받는 데에도 아무런 제한이 없다.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이어 다음날인 4월 17일 오전 10시 30분쯤에도 또 다른 10대 학생 C 군이 서울 강남 도곡동의 한 중학교에서 같은 동급생 D 양을 흉기로 찌른 뒤 달아났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경찰은 C 군이 아파트에서 투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C 군이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다친 D 양은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받고 있는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잇단 10대 학생들의 극단적 선택이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고위기 청소년들을 조기 발굴하고 이들 보호가 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보통신산업 육성과 별개로 반사회적 행위로부터 SNS 서비스 이용자를 보호할 규제가 화급하다. 더불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도 SNS상에 반사회적 콘텐츠가 올라오는 경우 즉시 삭제 등 자율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방송법」 등 관련법도 정비해야 한다.

통계청이 지난해 9월 27일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고의적 자해(자살)는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순위 1위이고, 40대, 50대에서는 사망원인 순위 2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대(10∼19세) 조(粗) 사망률(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은 7.1명(43.7%)으로 한해 전 6.5명(41.1%)보다 0.6명(10.1%)이나 증가했다.

60대(-5.7%)와 40대(-3.4%), 80대 이상(-2.2%) 등 대부분 연령대에서 감소세를 보인 것과는 정반대 결과다. 무엇보다도 12~14살 연령층으로 좁혀 보면, 해당 연령대 자살률은 2020년 3.2명에서 2021년 5.0명으로 무려 1.8명(56.25%)이나 크게 늘었다. 10대의 자살·자해 시도 역시 증가 추세를 보이는데, 이들의 자살위험은 다른 연령대보다 무려 20~30배 높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청소년들의 우울감이나 고립감이 더 심해진 상태로 최근 들어 부쩍 나빠지고 있는 청소년 정신건강 지표는 이렇듯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다행히 정부는 지난 4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6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 회의를 개최해 ‘제5 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027년)’을 확정했다. 이번 기본계획은 ‘자살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을 비전으로 2021년 26명인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를 2027년 18.2명으로 3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10년마다 실시하는 정신건강 검진 주기를 2025년 20~34살 청년층부터 2년 주기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행 시기가 문제다. 10대는 초등학교 4학년, 중1, 고1 때 학생 검진을 받는데, 주로 신체 발달 상황에 맞춰져 있어 이들에 대한 정신건강 검사도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자살 유발정보 모니터링을 위한 전담 조직도 확충된다. 자살동반자 모집, 구체적인 자살 방법을 알려주는 사진이나 글 등 자살유발정보는 자원봉사자를 활용하여 모니터링하고 있으나, 실시간 대응이 어렵고 게시글 삭제요청 외에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는 자살유발정보 모니터링 전담 인력과 조직을 갖춰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신고·긴급구조·수사 의뢰까지 즉각 대응해 유해환경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 현재 유선(1393)으로 이뤄지고 있는 자살 예방 상담은 청소년·청년이 익숙한 SNS 상담을 도입해 상담 창구를 확대한다.

무엇보다 학교와 가정에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청소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이들을 도와야만 한다. 보건복지부가 중앙심리부검센터를 통해 심리 부검을 분석한 결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자살 사망자 92.0%가량은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거나, 불면 과다수면, 죄책감과 무기력감 등 언어와 행동 변화를 통해 경고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경고를 인지하는 주변인의 비중은 21.4%에 불과하다고 한다. 특히 자살 사망자 상당수는 약물·알코올 등 자극을 추구하거나(36.0%), 자해(12.8%) 또는 자살 시도(35.6%)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이나 아동학대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최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돌봐야 한다. 극단적 선택은 모두 삶의 만족도가 적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우울증과 관련돼 개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로 개인의 삶의 질과 관련이 높다. 특히, 청소년들의 우울감은 삶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통계청 소속 통계개발원에서 9~18세를 상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20년 아동·청소년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만족도는 6.8점으로 2017년 6.99점에 비해 0.19점이나 낮아져 상대적인 악화를 불렀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성적 지상주의와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과도한 경쟁사회를 지양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펴야만 하겠지만, 은둔형 청소년 등 당장 위기에 처한 이들이 극단의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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