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중앙뉴스= 박근종]전세 사기를 당한 청년들의 비극적인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4월 17일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의식을 잃고 발견된 30대 여성 A씨가 끝내 숨졌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다.

그는 2019년 9월 보증금 7,200만 원에 전세 계약했다가 2년 만에 9,000만 원으로 올려준 아파트가 지난해 6월 통째 경매에 넘어가 힘든 나날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14일에도 이 지역에서 오피스텔 보증금 9,000만 원을 날리게 된 20대 남성 B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사흘 만이다.

또한 지난 2월 28일에는 30대 남성 C씨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7,000만 원을 주고 건축왕 소유의 빌라를 계약했지만, 이 빌라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결국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특히 C씨는 500만 원 차이로 최우선변제금을 보장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창 꿈을 펼쳐야 할 젊은이들의 잇따른 죽음에 슬프고 안타깝다 못해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이들은 모두 125억 원대 전세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된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이라 불리는 60대 건축업자 남모 씨 일당에 전세보증금을 떼인 이들로 모두 20~30대였다. 꿈 많은 젊은 청춘들이 악덕 건축업자의 탐욕으로 삶의 의지를 잃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정부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추가 피해 예방을 위해 법원의 부동산 경매를 일시 중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싼값에 집을 낙찰받은 경매꾼들이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추가로 대출받아 전세 계약을 다시 하거나 웃돈을 주고 사라거나 그게 아니면 나가라”고 요구하면서 이들의 정신적 고통이 극심해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한몫을 챙기려는 경매꾼들의 이런 요구가 전세 사기에 이은 ‘2차 가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세로 살던 집을 임차인들이 경매로 받을 수 있도록 ‘우선매수권’과 ‘저금리 대출’을 해줘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다. 특히 미추홀구 피해자들의 경우 애초에 근저당권이 설정된 채로 전세 계약을 해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전세보증금을 더욱 되찾기가 힘들다.

법에 따라 소액임차인은 주택 가액의 1/2 범위 내에서만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있고 다가구주택의 경우에는 세입자가 여러 명이어서 최우선변제금액도 N분의 1로 나눠 계산하되 이것 마저 주택가액의 1/2 범위 내에서 임차인의 보증금을 총 합해서 이를 또 나눠 배당받게 되지만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4월 17일 사망한 A씨 경우도 전세보증금이 9,000만 원이어서 최우선변제금 지급 기준(8,000만 원)보다 높아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피해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전세 사기는 개인의 부주의나 과실로 치부할 사안이 결단코 아니다.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는 2020년 8월부터 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됐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데다 공인중개사들의 불법 행위에도 별반 무신경으로 일관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악덕 업자들의 전세 보증 사고 증가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사전에 경종을 울리지 못했다.

금융당국은 전세대출로 인한 은행들의 ‘리스크’가 보증기관에 일방적으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인지면서도 방치했다는 의혹이 짙게 묻어나고, 대출 브로커 감독마저도 소홀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집값 급등과 급락을 불러온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방증(傍證)한다. 결국 이들의 죽음은 악덕 건축업자의 탐욕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이 야기한 사회적 타살인 셈일 수 있다.

정부도 올들어 악성 임대인 신상 공개, 안심 전세 앱 도입, 전셋집 낙찰 임차인 무주택자 자격 유지 등 임차인 피해 대책을 속속 내놓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으로 피해자 구제에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앞서 2월 말 숨진 30대 피해자 C씨는 유서에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다. 저의 이런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그로부터 2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저리 대출의 대환 상품 신설과 전세대출 만기 연장, 긴급거처 신속 지원, 피해회복법률서비스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턱없이 부족하다. 대출 신청 요건이 까다로운데다 긴급 주거 주택이 피해자들의 실거주 요건과는 거리가 먼 탓이다.

인천광역시장이 지난 4월 17일 저녁 인천 미추홀구청에서 국토교통부 1차관, 미추홀구청장과 비공개로 긴급 현안 점검 회의를 갖고 정부에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책을 강화해달라고 요청했고 현재 경매가 진행 중인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와 경매를 할 때 피해자 우선매수권 부여, 대출 한도의 제한 폐지, 긴급 주거지원에 따른 이주비 지원 등을 건의했을 뿐이다.

피해자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미추홀구에서만 전세 사기 피해자가 3,000여 가구에 달한다고 한다. 161가구의 전세금 125억 원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구속돼 재판받고 있는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세입자가 불안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피해자 지원대책은 너무도 부실하고 무성의하다.

정부는 더 이상 비극이 이어지지 않도록 기존 대책에 안주하지 말고 하루빨리 피해자들이 고통을 덜어버리고 극단 선택에서 벗어나 재기에 나설 수 있도록 서둘러 실효성 있는 실질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세 사기 주택의 경매를 일시 중단하고, 국가가 일단 피해금을 선 지원해 달라는 피해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많은 피해자가 삶을 포기할 정도의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을 낙찰받으면 무주택자로 인정해주겠다는 정도의 대책은 너무나 한가하고 안일한 대책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전세 사기 피해는 ‘사회적 재난’에 준할 정도다. 피해자들은 인천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전세 사기 피해자와 깡통전세 규모가 전국적으로 얼마 정도 되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세입자가 전세 사기나 보증금 미반환으로 피해가 발생했다면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위법 여부를 수사하고, 국가가 피해자를 우선 구제한 다음 피의자나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수습책을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건축왕’이나 ‘빌라왕’ 같은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은 피해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고 함께 모일 수도 없어 공동 대응하기는 매우 곤란하므로 한국자산관리공사 같은 공공기관이 개별 채권을 매입한 다음 우선매수권과 경매신청권 등을 행사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를 비롯한 공공주택사업기관이 피해 주택을 매입한 다음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해 피해자들에게 지원하는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더 이상 불행한 비극적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둘러 대책을 강구하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 피해자들이 전세 사기를 당한 뒤 자신을 책망하고 국가를 원망하면서 스스로 삶의 끈을 놓는 최악의 비극 상황은 더 없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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