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중앙뉴스=박근종]외국계 증권사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에서 쏟아진 대량 매물이 주식시장을 혼돈에 빠트리고 있는 가운데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검찰과 금융당국 합동수사팀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삼천리·대성홀딩스·서울가스·선광·세방·하림지주·다올투자증권·다우데이타 등 8개 종목의 주가가 지난 4월 24일부터 폭락을 거듭해 시가총액이 8조 원 가까이 사라졌다. 지난 4월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서울가스(-30.00%), 대성홀딩스(-29.98%), 선광(-29.86%) 등 3개 종목은 나흘 연속 하한가를 기록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SG증권발(發) 무더기 하한가 사태의 파장이 커지면서 드러난 정황에 따르면 이번 주가조작은 통상적인 치고 빠지기식 시세조종과 달리 다단계식 사기에다 파생상품을 악용한 신종 수법이 동원됐다. 작전세력은 2020년부터 최대 1,000명 안팎의 고액 자산가들로부터 다단계식으로 투자금을 모은 뒤 차액결제거래(CFD │ Finance contract for difference) 계좌를 활용해 주가를 띄웠다가 주식을 대거 처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CFD는 현물주식 보유 없이 진입가격과 청산 가격 간 차액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파생상품거래인데 증거금의 2.5배까지 차입투자가 가능하다.

외국계 증권사가 거래를 대행해 투자 주체가 노출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일당은 지난달까지 유명 연예인과 의사 등 전문직을 앞세워 투자자 모집을 했는데 심지어 중견기업 대표, 증권사 회장까지 연루돼 파문을 키우고 있는 데다 배경에 금융·IT업계 큰손과 정·관계 인사 등 대규모 주가조작 세력이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주가조작은 3년에 걸쳐 진행되면서 당국의 감시망을 무력화했다. 그 사이 대성홀딩스 주가는 최저가 대비 무려 1,741%나 폭등했고 선광, 다우데이타, 삼천리, 서울가스, 세방, 다올투자증권, 하림지주도 404∼1,625%나 뛰었다. 지난해부터 위험 징후가 보였지만 금융당국은 사전에 잡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고도 늑장 대응으로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비등한다.

주가조작 세력들에 의해 많은 개미투자자에게 큰 피해를 준 데다 시장의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범죄이기에 엄정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이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사후 처벌보다 중요한 게 사전 예방이란 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의 늑장 대응 여부도 철저히 따질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지난 주말 작전 의심 세력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데 이어 관련자 10명을 출국금지 시켰다. 증권사 사장도 긴급 소집해 CFD 신규 가입과 매매를 중단시켰지만 뒷북 대응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는 허점투성이 제도와 투자자들의 ‘한탕주의’, 당국의 늑장 대응이 집약된 최악의 결과다. 증거금 40%만으로 익명의 ‘빚투’ 거래를 할 수 있는 고위험 파생상품 CFD는 태생부터 주가조작과 투기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시장 활성화를 이유로 CFD 규제가 완화돼 작전세력이 파고들 틈이 커졌고 결과적으로 정부가 허용한 CFD는 사태를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이들 8개 종목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고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주식 유통 물량이 적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별한 호재가 없는데도 주가는 올해 4월 초에 2021년 말 대비 3~6배 올라 주식시장에서는 ‘작전세력’이 개입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금융당국은 이런 ‘작전설’을 올해 4월 초에야 인지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2주간이나 시간을 지체해 조사가 늦어졌고, 결국 주식시장 전체 신뢰도가 추락하는 상황으로 번지게 됐다.

그런 사이 작전세력과 대주주들이 대량 물량처분에 나서 개미투자자의 피해만 더 커진 결과를 초래했다. 어이없는 것은 이 과정에서도 일부 대주주는 폭락 직전에 주식을 팔아 최고 수익률을 거뒀다는 점이다. 김 아무개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지난 4월 20일 시간외매매로 다우데이타 140만 주(3.65%)를 주당 4만 3,245원에 처분해 605억 원을 확보했고, 김 아무개 서울가스 회장도 지난 4월 17일 시간외매매로 주당 45만 6,950원에 10만 주를 팔아 456억 9,500만 원을 챙겼다.

참고로 지난 4월 28일 종가는 다우데이타 1만 7,370원, 서울가스 12만 7,900원이었다. 평소 10주 미만인 선광의 공매도 물량은 지난 19일 4만 주 이상이었다고 한다. 귀신도 놀라게 할 절묘한 매도 타이밍에 비춰 주가조작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게 아니면 금융당국의 조사 계획 정보가 사전에 새 나갔을 가능성에 대한 짙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불법 거래에 뛰어든 자산가들도 책임에 자유롭지 못하다.

주가조작은 자본시장을 교란하고 기업과 투자자를 멍들게 하는 중대범죄가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원화 약세로 외국인 자본 이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가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가조작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주가조작의 진상과 전모를 철저하고 명백히 밝혀내 추상같이 준엄한 책임을 묻고 작전세력을 발본색원(拔本塞源) 뿌리를 뽑아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이상거래(異常去來) 징후를 감지하지 못한 증시 안전장치의 허점도 면밀하게 분석해 서둘러 문제점을 찾아 완벽하게 보완해야만 한다. CFD 등 고위험 파생상품 전반을 철저히 점검하고 분석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일도 화급하다.

피해 종목들의 경우 빚을 내 투자하는 신용거래 비중이 높았는데 빚투 행태를 살펴 투자자 보호에도 선제 대응이 긴요하다. 아울러 당국의 감시 소홀과 늑장 대응 과오(過誤)를 되 내어 보며 깊은 성찰과 함께 다시는 재연되지 않도록 결연한 의지와 단호한 각오를 다지고, 날로 고도화하는 금융범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치밀한 시장 모니터링과 이상 징후에 대한 신속 대응 시스템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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