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역사를 안다고 과신하지 말라

이성(理性)에 대한 과신을 버려라

조정현 칼럼니스트
조정현 칼럼니스트

추론된 세계관을 하나의 고정불변하는 절대가치로 보면 안 된다. 특히 정치든 뭐든 싸움판에서는 더욱 당연하다. 예를 들면 역사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생각하는 역사주의가 그러하다. 서구에서 만악의 근원으로 꼽고 있는 사상의 원조는 플라톤이라고 칼 포퍼는 지적한다.

칼 포퍼는 ‘이성’에 대한 과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단순한 합리적 추론 능력 자체가 아닌 하나의 관념체계로서의 ‘인식된 이성’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데아는 닫힌 세계

현실은 이데아의 모사일 뿐이며 조잡한 현실 너머의 이데아가 진실 세계라는 플라톤의 이 ‘이데아’가 이상국가론이 된다. 여기에 역사 개념이 개입되면서 헤겔의 변증법이 되고 그 종착역이 맑스의 공산사회가 된다. 이것이 ‘닫힌 세계’라고 칼 포퍼는 비판한다.

역사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운명의 힘에 의해 정해진 노정에 따라 진행되고 인간은 그 역사의 무대에서 어떤 엄중한 사명을 받아 수행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강요받는 것이 현실인데 그것이 바로 민족주의라고 지적한다.

 

이데아는 추론된 세계관일 뿐 절대가치가 아니다

칼 포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겔은 프러시아의 전체주의적 민족주의의 편을 들었다. 민족주의는 본래 종족적 본능, 정념, 편견에 휩싸여 개인적 책임을 집단적 책임으로 전가시켜 그 긴장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에 호소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평등주의와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열린사회와 대립되는 비합리적인 집단주의적 운동이다”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적 만행과 현재 소위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중화주의 등이 그러하다. 역사를 민족 대 민족의 대립 투쟁으로 보는 관점은 20세기 전체를 지배했고 특히 게르만족의 민족적 사명을 내세운 나치즘은 그 절정이었다.

민족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개인 대 개인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열린사회(The Open Society)’에 진심이었던 것은 그의 시대가 역시 거대한 민족적 열풍이 몰아쳤던 비극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칼 포퍼에 의하면 맑스주의는 역사주의의 가장 순수하고 정교한 하나의 형태다. 헤겔 좌파인 맑스주의와 헤겔판 파시즘은 그 사상적 원천이 동일하지만 맑스주의는 인도주의적 충동이 강렬하게 넘친다고 보면서도 사회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하나의 과학적 방법임을 강조한다.

 

무언가 결정되어 있어야만 한다면 ‘꼰대’?

따라서 맑스주의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방법론적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일이다. 과학적 예언에 깊은 관심을 지녔던 맑스는 미래가 미리 결정되어 있을 때에야 비로소 과학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고 엄격한 결정론을 신봉했다.

그런데 그런 엄격한 결정론은 그가 살던 시대의 화학적 지식의 한계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현재 물리학에 있어서조차 엄격한 결정론은 과학적 증거들에 의해서 반증되고 있다. 엄격한 결정론은 과학적 예측의 필수적 전제조건이 아니다. 그게 아니어도 과학적 탐구는 수행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과학적 예측과 거시적인 역사적 예언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적 예측을 지원해 주는 논거를 역사적 예언을 지원해주는 논거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20세기의 대부분은 그 과학적 도덕에 호소하며 공산주의가 칩거했었다.

미래가 불안해 반드시 반드시 무언가가 마음에 들게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꼰대’같은 믿음이 강해지면 민족주의적, 전체주의적 발상은 극강의 반인륜적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이상 세계가 오히려 닫힌 사회?

“나는 폭군의 치하에서 다른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폭군 살해를 인정하며 폭력적 혁명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가르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기독교 사상가들과 신념을 같이한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혁명은 민주주의 수립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백성의 통치’, ‘다수의 통치’와 같은 애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통치자들에 대한 공적 통제를 허락해 주며 그 통치자들을 피통치자들이 해고할 수 있게 하는 일련의 제도적 틀(총선거, 정부를 교체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을 말한다. 폭력의 사용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개혁을 불가능하게 하는 폭군의 치하에서만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폭력 없이 개혁을 가능케 하는 사태를 조성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같이 칼 포퍼는 민주주의 원리와 역사주의적 혁명을 비교하면서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를 설명한다. 열린 사회는 자기 교정이 가능한 사회다. 과학의 명제처럼 언제라도 부정될 수 있고 반증될 수 있는 사회다. 한 가지의 지도 원리만이 관철되고 요구되며 대중은 지도받는 존재일 뿐인 그런 이상국가는 오히려 닫힌 사회가 되는 것이다.

결국이 그러한 지배 원리를 강력하게 경계하지 안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추론된 세계관이 지배했던 역사적 비극을 우리는 안다. 특히 매년 6월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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