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중앙뉴스= 전대열 대기자]유난히도 일찍 찾아온 더운 여름기운이 심신을 나른하게 만든다. 계절의 바뀜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크게 지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온몸이 땀으로 젖는 것은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니다. 

속옷이고 겉옷이고 간에 매일 갈아입어야 하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마땅한 옷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도 있어서 이리저리 옷걸이를 들치는 게 일상사다. 어떤 이들은 코디네이터가 만반 준비를 갖춘다고 하는데 그런 호사는 누려본 적이 없기에 남의 집 얘기나 다름없다. 그나마 내 물건 내가 챙길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는 얘기들을 들으면 요즘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용어가 치매(癡呆)다. 

치매라는 말이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말로 고쳐부르기도 하지만 요새는 완전히 굳어진 병명이 되었다. 옛날에는 노망(老妄)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쓰였는데 치매로 대치된 이후에는 이 말은 아예 금기어다. 늙어서 망령들었다는 것보다는 그나마 치매가 점잖은 편이다.

치매는 내 주위 친구들 사이에도 여럿이 목격된다.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내내 잘 다니던 사무실을 찾아오지 못하고 두 시간이상 기다리게 만드는 친구가 있어 서로 답답한 느낌을 갖는다. 

시간이 더디더라도 끝내 찾아오기라도 하면 참으로 반갑다. 치매를 의심하던 처지에서 제 발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인지능력에 결정적 하자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의학상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그런 친구의 발걸음은 뜸해진다. 

다른 친구 하나는 젊어서부터 술고래로 이름난 사람인데 스스로 알콜성 치매가 왔다고 떠벌리면서 병원 처방약을 복용한다고 금주선언을 하더니 몇 달 못가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이제는 어떤 모임에도 혼자서는 참석하지 못하고 자식이나 부인이 동반하여야 되는 형편이다. 의학이 가장 발달한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서도 전직 대통령이나 세계 권투 챔피언이 치매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떴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뉴스다.

유명 영화배우, 소설가, 화가 중에서도 이런 사례에 해당되는 분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의 치매 발병이 적지 않다. 다만 한국은 미국과 달리 이를 한사코 감추려 한다. 모두 체면을 중시하는 전통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뜻이리라. 10여 년 전만 하다라도 우리나라에서 ‘미투’라는 용어는 아예 사용된 적이 없었다. 

대부분 직장에서 남자 상사가 부하 여직원을 성희롱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여성들은 이에 저항하거나 싫은 내색조차 하지 못하는 풍토였다. 일종의 관습처럼 여겨지던 이런 성희롱을 과감히 폭로하고 나선 것은 선구자적 여성 아니면 생각할 수 없었다. 권력자 종교인 연예인 교수 소설가와 시인 군인 등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든 사회전반에서 물밀처럼 터져 나온 미투는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여성들이 기존사회의 손가락질과 체면 명예를 모두 떨쳐버리고 용감하게 자신을 던졌다. 치매에 걸린 것은 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감춰야 할 이유가 없다.

치매는 하루라도 빨리 증상이 발견되었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더 이상의 진전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유명이사들의 가족이 이를 공개하고 본인 역시 일상생활에 임한다면 훨씬 안정된 치유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전개되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에 대한 국론분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 쇠고기 파동을 겪으며 반대를 위한 반대의 ‘치매성’을 경험한 바 있다. 없어서 못 먹는 미국인들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데 한국에서만 이명박을 골탕 먹게 만들었다. 극악스럽게 광우병을 고함치던 사람들은 기억력을 상실했는지 뒷소문이 없다. 집단치매가 아니면 10년이 지났어도 한한 마디쯤 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 오염수도 가장 신뢰도가 높은 유엔 IAEA가 과학적인 근거로 제시한 보고서를 뭉개버리는 심뽀도 치매 경지에 들어섰다고 말하면 허둥지둥 좌충우돌 할 사람들이다. 치매가 여러모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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