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파시즘의 잔영들이 설친다

로버트 O. 팩스턴(Robert O paxton)의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은 공산주의와 더불어 20세기 정치사의 최대 주제였던 파시즘 연구의 결정판이라고들 말한다. 파시즘 연구의 대가로 불리는 저자의 40여년에 걸친 연구의 총결산이기도 하다.

저자는 ‘파시즘’의 전형으로 인식되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운동과 체제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며 파시즘의 실체를 추출해낸다. 1차 대전 이후 유럽을 광기로 몰아넣었던 파시즘의 21세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생산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파시즘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가장 먼저 독일이나 이탈리아를 떠올릴 것이다. 히틀러의 지배를 받던 2차 대전의 독일은 “하일 히틀러!”라고 온 국민이 소리쳐 외치며 제 3제국을 건설하겠다던 민족 지상주의는 파시즘의 전형이었다.

2차 대전 전의 일본 역시 파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있었다. 하나의 이념으로 온 국민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특정한 정치적 이상, 목표, 광기의 원천을 향해 돌진하던 시대였다.

흔히 1차 세계대전 이우 독일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광기’로 몰아넣은 파시즘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파시즘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고 책에서 단언했다. 과거 세계를 광기로 몰아넣었던 파시즘이 세기가 바뀐 오늘날에도 갖가지 양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시즘은 항상 변할 뿐이다

집단우월주의, 공동체 몰락에 대한 두려움, 카리스마 있는 국가 지도자에 대한 갈망, 집단을 위해 폭력을 옹호하는 태도 등의 정서적 요소들이 파시즘적 열정을 구성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오늘날에도 몇몇 국가에서 애국주의로 포장한 파시즘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행태에서 파시즘의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9.11 이후 미국 정부는 국민의 자유를 크게 줄여가면서까지 극단적인 애국주의를 강조했다.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했으며, 이라크 전쟁을 감행했다. 미국 국민들은 부시 대통령을 재선시키면서 그런 정부를 지지했다. 지금 2023년에서 다시 돌아보아도 사라졌다고 여겼을 법한 파시즘의 열정과 광기가 현존함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라고 다를까. 우리나라 일부 지식인들과 언론들이 국민들의 가슴 속에 파시즘의 잔재를 뿌리 깊이 우려내는 행태를 종종 보게 되니 말이다. 이제 그러한 시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때임에도 여전히 자기모순의 현재를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현재의 남북 관계나 과거의 한일 관계를 좌와 우의 기회주의적 이념 정치에 악용하는 민족주의적 정서의 고양, 선거 때마다 억지 조장한 지역적 갈등을 부추기는 집단주의적 지역이기주의 성향, 사이비 역사주의적 오류 등의 복합적 정치체제가 바로 파시즘인 것이다.

비단 이 파시즘의 뿌리는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소위 보수와의 결합으로만 태동하는 것이 아니다. 소위 진보라 칭하는 집단의 정치적 수단으로 파시즘의 행태가 선동되는 모습들을 현시점에서도 보고 있기도 하다.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공세의 수단, 권력 또는 행정적 무능에서 빚어진 권력 회복의 수단 등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열광하고 쏠리는 사회. 그러한 조장을 바탕으로 한 배타적 정치 행태의 만연 그리고 정치적 상징 조작에 약한 연약한 심성을 자양분으로 삼은 허무한 열정에 기대는 정치적 삶의 행태가 사라지지 한 선거라는 이름으로 항상 파시즘은 재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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