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중앙뉴스 칼럼= 전대열 대기자]3년을 끌던 한국전쟁이 막을 내린 것은 정전협정을 통해서다. 전쟁의 한 복판인 판문점에 회담장소를 정하고 2년 동안 지루하기 짝이 없는 휴전회담을 한 끝에 양측이 차지한 현 상태에서 총성을 멈춘 것이다. 

중학교 시절 우리는 휴전회담 반대 기치를 내건 이승만정부의 지시에 따라 거리를 누비며 구호를 외치고 휴전을 반대하는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그 뒤 대학시절에 4.19혁명 대열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은 이 때 배웠던 시위 방법을 고스란히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농반진반(弄半眞半)의 우스개를 한다. 

이승만은 학생들을 시위에 동원하였지만 그 시위 경험이 결국 자유당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뜻에서다. 정전협정이 맺어진 날이 1953년 7월27일이라 며칠 전 7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 전쟁 마감을 북한에서는 전승절이라고 크게 내세우는데 남북한 모두 국토 전부가 피폐해졌을 뿐 어느 쪽이 승리했다고 큰 소리 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남은 것은 처절한 빈곤과 파괴뿐 이었다. 70년 동안 남북은 치열한 체제경쟁을 통해서 국민경제를 부흥시키는데 전력을 기우렸다. 남한은 이승만독재에 대항하여 4.19혁명을 성공시켰고 5.18과 6월 항쟁을 통해서 민주화를 쟁취하며 산업화를 이룩하여 이제는 세계 경제10대강국에 들어가는 쾌거를 자랑한다. 그러나 북한은 김일성일가 3대 세습을 이어가며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였지만 핵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대상이 되었다. 

남북은 끊임없는 협상과 접촉으로 공동성명도 내고 금강산 관광으로 빈번하게 왕래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북핵으로 인하여 정중동(靜中動) 상태다. 전쟁을 통해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막대한 인명손실과 산업파괴만 남았다. 정전으로 평화를 구가했지만 가난을 구제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남한은 이를 극복했지만 북한은 아직도 찌든 빈곤에 허덕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공산주의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공산국가이면서도 개방정책을 구가하여 경제를 살려냈다. 북한식의 폐쇄정책으로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이런 정세를 잘 아는 민주당 이재명대표가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는 소신을 피력하여 많은 비판에 휩싸였다. 지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러시아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전국이 폐허로 변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우크라이나는 움츠러들지 않고 1년을 넘게 항전중이다. 미국은 물론 나토제국도 탱크와 무기를 지원하여 전쟁승리를 격려하고 있다. 

이재명식 ‘더러운 평화’를 선택하면 우크라이나는 파괴를 면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남는 것은 철저한 굴욕뿐이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망국 직전까지 갔다. 이순신은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길 수 없다는 신념으로 바다를 지키며 승리를 쟁취했다. 이순신이 더러운 평화를 택했다면 참혹한 패자로 끝났을 것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연개소문과 양만춘의 안시성 대승은 더러운 평화로 얻어진 게 아니다.

병자호란에서 보여준 인조의 치욕은 삼전도 항복에서 극에 달한다. 더러운 평화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는 우리 역사에서 씻어낼 수 없는 치욕 중의 치욕이다. 1910년 8월29일은 우리가 몽매에도 잊을 수 없는 망국의 날이다. 일본에 강제합병 되었다. 이 때 이를 주도한 사람이 매국오적이다. 

이완용이 그들의 수괴다. 이완용은 일제치하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며 떵떵거렸다. 이 때 애국열사 이재명(李在明)은 인력거를 타고 나들이하던 이완용에게 달려들어 칼을 난자했다. 그러나 악명(惡命)이 길었던 이완용은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6개월간 입원 끝에 살아났다. 

그 때의 이재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현대판 이재명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러운 평화를 선호한다. 지금도 북한 김정은 일당은 핵을 앞세워 전 세계를 위협한다. 이들에게 평화를 구걸하면 더러운 평화체제를 이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처절한 패배와 굴욕을 자초하는 일일 뿐이다. 전쟁은 나쁘고 해서는 안 되지만 무릎 꿇고 평화를 구걸하는 것은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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