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중앙뉴스= 박근종 칼럼]최근 은행권에서는 연일 대형 금융 사고가 터지며 부실한 내부통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4월 우리은행에서 732억 2,000만 원의 대형 횡령 사고가 터지는 등 금융권 역대 최대 연간 횡령액인 1,010억 원을 기록하며 경종이 울렸고 금융권과 금융감독원이 내부통제 강화 대책을 내놨지만, 은행권의 대규모 횡령 사고 적발은 올해도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 8월 2일 적발된 BNK경남은행의 562억 원 횡령 사고와 지난 8월 9일 적발된 KB국민은행의 고객사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127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고에 이어 지난 8월 10일에는 DGB대구은행에서 고객의 동의 없이 1,000건 넘는 불법 계좌를 개설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신뢰가 생명인 은행권에서 하루가 멀다고 대형 금융 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불과 일주일 새 3건의 대형 금융 사고가 불거지면서 은행권 내부통제 부실 논란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우선 BNK경남은행 한 간부는 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업무를 담당하며 562억 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간부가 연루된 다른 사건을 조사하던 검찰이 이상 징후를 포착할 때까지 은행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 통보를 받은 은행이 자체 조사 후 횡령액이 78억 원이라고 신고했는데, 금감원은 열흘 만에 562억 원이 사라진 것을 밝혀냈다. 횡령 금액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만큼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뜻이어서 충격은 더 크다.

또한 국내 최대 민간 은행인 KB국민은행 증권대행부 직원들은 2021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1개 상장사의 증권 업무를 대행하면서 알게 된 무상증자 규모와 일정을 주식 매수에 이용했다. 이들은 증권 업무를 대행하면서 주가에 호재인 무상증자 정보를 미리 알고서 본인이나 가족 명의로 정보 공개 전 주식을 사뒀다가 공시 뒤 주가가 오르면 파는 방식으로 127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가 금융감독원에 적발됐다. 해당 부서 직원이 17명인데 이 중 10명가량이 연루됐다니 조직적 범죄에 가깝다. 대형 은행 직원들의 조직적인 불공정거래 혐의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욱 당혹스럽고 충격이 크다.

한편 DGB대구은행 직원 수십 명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객 몰래 문서를 위조해 증권 계좌를 개설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실적을 부풀리려 고객이 작성한 증권사 계좌 개설 신청서를 복사해 다른 증권사에 추가 증권 계좌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1,000건이 넘는 고객 문서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나 금융감독원이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 불법 개설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안내문자(SMS)를 차단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불법 계좌 개설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3조(금융실명거래) 위반과「형법」제231조(사문서 등의 위조ㆍ변조) 위반에 해당되는 범죄행위다. 실적 달성을 위해 고객 계좌를 임의 개설한 직원들이 100여 명에 달하고 심지어 한 지점이 아니라 여러 지점 직원들이 벌인 일이어서 은행 내에서는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 있었다는 의혹이 짙다. 게다가 은행 측은 이러한 비리를 인지하고도 금융당국에 제대로 보고조차 안 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최근 들어 부동산 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22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늘어났다. 최근 대출금리가 반등하고 연체율도 오르고 있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도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9일 발표한 ‘7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7월 말 기준 1,068조 1,000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 원 증가해 2021년 9월 6조 4,000억 원 이후 1년 10개월 만의 최대치다.

문제는 시중금리 상승 압박과 연체율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면서 이에 따른 연체율 상승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 5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0.4%로 전년 동기 0.24%와 비교하면 0.16%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취약 차주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한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를 틈타 가뜩이나 손쉬운 이자 장사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세간의 눈총을 받아온 은행들이 기본적 소양인 윤리 의식마저 마비되어가는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1월 내부통제 혁신안을 내놨음에도 툭하면 은행 비리가 연이어 불거지고 있으니 감독 당국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금융의 본질은 신뢰이고 금융업은 신뢰 기반 산업이다. 한번 신뢰가 허물어지면 뿌리까지 송두리째 흔들린다. 돈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을 고객에게 확실히 심어줘야 할 은행원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고객의 돈을 빼돌리고, 고객 비밀을 제 돈벌이에 악용하고, 고객 서류를 위조하는 비리를 반복해 저지르고 있는 현실이 경악스럽다.

많은 국민이 고금리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평균 연봉 1억 원 은행원들은 고금리 덕에 불어난 이자 이익으로 성과급 잔치, 명퇴 잔치를 벌여 왔다. 지난해 코로나19 거리두기가 끝났는데도 영업시간 복귀를 거부하면서, 정년 65세 연장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총파업까지 벌였다. 은행들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망할 뻔하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한 ‘공적자금’ 덕분에 기사회생한 기억이 남아있다. 사회에 부채 의식을 갖고 무거운 책임감을 보여야 할 은행원들이 어느 직종보다 심한 도덕적 해이에 매몰되어 탐욕 행태를 보여주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고 실망스럽고 개탄스럽다.

이제라도 금융회사 스스로 뼈를 깎아내는 심정으로 대오각성하고 자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은행권 전반에 구멍이 숭숭 뚫렸는데 금융당국은 내부통제 강화보다 경쟁 촉진에만 적극적이었다. 임직원들이 내부통제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선의에만 기댈 수 없어 보인다. 은행들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제도 마련이 화급하다. 횡령 사고 발생 시 은행장 등 경영진도 엄히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고칠 필요가 있다. 횡령 범죄의 양형기준도 높여야 한다. 금융에 대한 불신이 더 번지지 않도록 불길을 빨리 잡아야만 한다.

금융당국이 지난 7월 5일 내놓은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의 핵심은 은행업 인가 장벽을 대폭 낮춰 새로운 플레이어들을 적극 시장에 들이는 데 있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과점 체계가 굳어져 각종 폐해를 불러온 만큼 ‘메기’가 언제든 진입할 수 있는 시장 구조를 갖춰 경쟁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논의 초반 핵심 안건으로 주목받았던 ‘특화 전문은행’ 도입, ‘비은행권 지급결제 업무’ 허용 등은 유보되면서 시중은행과의 실효적 경쟁을 촉진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은 사실이다. 횡령 사고 발생 시 은행장 등 경영진도 지휘 감독 소홀에 대한 연대책임 차원에서 엄중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고칠 필요가 있다. 횡령 범죄의 양형기준도 높여야 한다. 금융에 대한 불신이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불길을 빨리 잡아야만 한다.

금융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온정주의’에 젖은 ‘솜방망이 처벌’ 탓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급증하는 금융권 횡령 사고 원인과 관련해 임직원의 준법 의식 취약과 더불어 금융 사고 예방을 위한 은행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범죄가 주로 ‘한탕’을 노린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적 이득보다 더 큰 처벌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 최근 5년간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보면 금융사 횡령과 배임, 불법 대출 등 중대한 위법 사실이 적발돼도 대부분 기관경고와 임원 문책에 그쳤다. 비리 혐의 직원들은 철저히 수사해 엄중히 죗값을 물리고 부당이득도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고 형벌 기간도 범죄 행위별로 단순 합산해 패가망신의 본때를 보여야 한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5년간 은행권에서 벌어진 횡령 사고는 총 83건으로 사고 금액은 871억 원에 달한다. 이 중 환수된 금액은 61억 원으로 회수율은 7.04% 수준이다. 지난해 우리은행은 지난 5년간 횡령금 732억 2,000만 원 중 1.12%에 해당하는 8억 원을 회수하는 데 그쳤다. 형사처벌 역시 횡령 액수가 수십억~수백억 원인데도 형량은 5년 미만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금융기관은 엄격한 도덕성과 윤리 의식이 요구되는 직종인데도 일부 종사자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떼먹고 보자’라는 식의 범법행위를 자행하고 일삼는 것은 고객 신뢰를 짓밟고 자본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몰지각한 처사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무관용원칙을 적용해 일벌백계로 추상같이 준엄한 철퇴를 가해야 한다.

은행은 시장과 고객의 신뢰를 기반으로 병존한다. 주식시장에 공시하기도 전에 무상증자 일정 등 내부 정보를 빼돌리고 신청하지도 않은 증권 계좌가 나도 모르게 개설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업이나 고객이 그 은행에 업무를 맡길 수 있겠는지 반문해 봐야 한다. 자신들의 실적을 채우기 위해 고객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야말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이런 일들이 은행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조직적으로 벌어졌는데도 ‘내부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고객을 배신하고 시장 신뢰를 훼손하는 은행 직원들의 불법과 비리는 엄단하고, 구멍 난 통제 시스템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비리가 터질 때마다 은행과 금융당국은 내부통제와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고구마 넝쿨 같은 사고는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방증한다. 금융회사 임원에게 담당 업무에 따른 구체적 책무를 지정해 문서화한 ‘책무 구조도(Responsibilities Map)’를 만들고 관리 조치 이행 여부를 감시하자는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부터 보완해 CEO와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 등 이른바 ‘C레벨’ 임원을 포함한 임직원에게 내부통제와 관련한 책임 내용을 지정하여 경영진 책임이 더 강화되도록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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